비겁함과 행동 사이

고문에 대해 생각해 봄

by 책읽는 리나

전에 무슨 책이었더라. <소년이 온다> 였던가. 모임을 하다가 고문이야기가 나왔다. 고문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내가 고문받는 것처럼 손톱 끝이 아파오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과 마음이 힘이 든다. 그러면서 만약 저 상황에 내가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나는 고문을 받는다면 (내가 고문받을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만약에) 1초도 못 버틸 것 같다. 1초도 못 견디고 동지들이 있는 곳이며 중요한 정보를 줄줄 털어놓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중요한 일을 맡으면 안된다. 기밀도 알아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적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럼 정말 비참해진다.


나는 정말로 육체의 고통을 잘 못 참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보면 고통을 잘 참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 (당시 1987년 6.10 이후 계속되는 시위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모든 시설,교통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상황이었다. ) 맹장 수술을 마취제 없이 하고 왔다는 친구가 있었다. 과연 그게 가능한 걸까 싶었다. <삼국지>의 관우는 화타가 자신의 팔의 뼈에서 독을 긁어내는 시술을 마취제도 없이 하는데도 담담하게 바둑을 둔다. 벌써 끝났냐며 바둑에 심취해 있어서 끝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중학교 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 욕한 부분이기도 하다. ××, 이게 말이 돼? 인간이 이럴 수가 있어?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가능하려나?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 조차도 할 수 없다.


나는 한번도 용감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먼저 나서서 흉중에 있는 말을 해본 적도 없고,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어본 적도 없다. 비겁했던 이유는 내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래서 내 몸 아픈 걸 못 참는 것일수도 있다.


암튼 다시 고문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때 고문 이야기를 하면서 독립 운동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갔던가.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체공녀 강주룡> 이야기의 전반부도 정말 인상깊게 읽었다. 두려움을 이기고 뭔가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요즘 부쩍 들어 기억하고, 잊지 않으며,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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