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리나 Aug 22. 2021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나는 전생을 믿지도 않고, 사후세계를 믿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만약에 내가 다음 세상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고 해도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인간의 사유를 할 수 없으므로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 존재는 나와는 아무런 연결관계가 없을 것이다. (어제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아무리 그레고리의 의식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벌레의 몸을 가지게 된다면 점점 인간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죽음이 두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을 순전히 지금 현재적인 나라는 사람의 시각에서 들여다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울림과 떨림>에 보면 물리학을 알면 죽음도 다르게 인식된다는 말이 나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까. 원자의 움직임에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없다. 인간의 사유도 원자로 만들어진 몸에서 일어난 일로 본다. 애초에 물리학이라는 학문에서 인간은 배제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도 원자로 이루어진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해서 내가 경험하는 일들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까. 괴로운 일과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르게 인식되는 걸까.


가끔씩 <코스모스>와 같이 우주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인간사 모든 것이 새옹지마와 같고, 지금 괴로워하는 일들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상일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허블 망원경을 이용해서 우주 너머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괴로움이 드라마틱하게 덜어지지는 않는다. 지치고 괴로운 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인지도 알지만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은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환기해보려고 한다. 그럼 지금 느끼는 나의 안절부절함이 조금은 진정될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언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P. 49

매거진의 이전글 혐오표현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