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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Oct 08. 202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2

누구나 들어는 봤지만, 완독 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그 책,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갈 것 같아 덮고 만다는 그 책, 지금 소개합니다.


 


 긴편집장님의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순간 '이거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되겠는걸'이란 예감이 밀려왔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신청, 예상치 못하게 오늘 이렇게 두 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우연한 일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명확한 인과관계만을 가지고 세상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물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겠는가. 여기 터무니없이 부정확하고 복잡한 혼란스러운 우주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다. 이제 그 우스꽝스럽고 기괴하지만, 심오한 철학적 깨달음을 주는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가 보자.


책이 두꺼워서 사진 찍기도 쉽지가 않다

                                                  


책 소개


지구 상에서 인간이 가장 발달한 생명체라는 생각을, 지구는 우주 안에서 계속 존재할 거라는 관점을 어처구니없이 비틀고 짓밟으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철학적이고 기괴하다. 이 시리즈는 1978년 BBC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해 TV 드라마, 책, 음반, 게임 등의 버전으로 재창조된 스토리이다. 블랙코미디적인 유머감각과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역자의 후기에 보면 '개연성에 침을 뱉어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스토리의 어지러움으로 인해 개연성을 따라가기보다는 작가가 깨알같이 뿌려놓은 유머와 농담을 즐기며 마음 편하게 읽어나가면 된다. 하지만 이 두꺼운 책을 목적지도 모른 채 하는 우주여행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따라가기에는 몹시도 벅차 허덕이며 읽어 내려갔다.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을 듯하지만 대략적인 설정은 이러하다. 지구를 관통하는 우주 초공간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따라 지구는 파괴된다. 지구가 파괴되기 전 베텔게우스 근처에 있는 작은 행성 출신의 포드 프리펙트는 아서를 구해 보고인의 우주선을 히치하이커 한다. 깨어난 아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주를 히치하이커 할 때 필요한 안내서인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를 보여준다. 하지만 보고인에게 들켜 우주선 밖으로 내던져지고 둘은 불가능한 확률로 지나가는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기로 운항하는 우주선에 구조가 된다. 신제품 우주선을 훔쳐 달아나는 자포드와 그와 함께 육 개월 전에 파티장에서 나간 트릴리언, 그리고 로봇 마빈까지 전설의 마그라테아 행성에 이르게 된다. 마빈과 아서는 마그라테아 지표에서 노인을 만나고 새 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듣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가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많으면서 허황되고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이건 뭐지 하는 부분도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황당함은 둘째치고 허무주의에 빠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율의지는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의미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시간과 공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자신이 현재 존재하는 순간에 적응해야만 한다. SF소설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자기 계발서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었는데, 앞으로는 새로운 상황에 뚝 떨어지듯이 우리는 놓이게 됨을 알려주려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십여 년 전 한 고등학교에서 독서수업을 하면서였다. 도서관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자유 독서를 하라고 하면 구석에 들어가 이 책을 빼서 가져오는 학생이 한둘은 꼭 있었다. 두께에 놀란 나는 "이 책을 읽으려고?" 하고 물었고, 남학생은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아니요. 베고 자려고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두고 엎드려 자기에 적당한  두께를 가진 책이었다. 벽돌책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던 이 책의 이름이 잊힐 무렵(제목은 또 얼마나 긴가) ,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자는 독서모임 회원들의 의견이 있어 거금을 투자해 산 뒤, 무려 5개월의 시간 동안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사서 서재에 꽂아놓으니 압도적인 두께에 다른 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책의 페이지수는 무려 1236페이지이다. )  보통 책을 독서대 위에 올려놓고 읽는데 이 책은 두꺼워서 그러기도 쉽지가 않았다.



두껍다는 사피엔스도 이 책에 비하면 얇게 느껴진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어나면서 다른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일은, 그게 어떤 일이든지 간에 또 다른 어떤 일을 일어나게 만든다. 일어나면서 다시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또다시 반복되어 일어난다. 하지만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과 조우하게 된다. 견디기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된 걸까 싶어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있는 대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면 삶이 조금은 덜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세계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설정들


이 소설에는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 이런 것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하는 것도 있고, 상상도 못 해본 내용도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본다.


# 모든 언어를 해석해주는 귀에 끼는 바벨 피시_ 바벨 피시 때문에 다른 종족과 문화 간 의사소통의 모든 장애를 제거하여 전쟁을 더 많이 일으켰다는 히치하이커 안내서의 설명을 보며 의사소통이 좀 안되고 못 알아듣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귀에 바벨 피시를 집어넣으면 어떤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라도 즉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듣는 언어 패턴들이 바벨 피시가 두뇌에 배설해놓은 뇌파 세포간질을 번역하게 된다.


# 지성을 가진 엘리베이터 _ 엘리베이터가 지성을 가지게 되면 정해진 일만 하게 되는 것에 좌절하게 된다는 기발한 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가까운 미래를 희미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승객이 엘리베이터를 타야지 하고 생각도 하기 전에 그를 태우러 그 층으로 간다. 덕분에, 예전에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지루한 잡담과 휴식, 친구 사귀기 등은 이제 다 필요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지성과 예지력을 갖춘 많은 엘리베이터들은 그저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왔다 갔다 할 뿐인 단순한 일에 좌절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종의 실존주의적 저항의 표시로 잠깐씩 옆으로 가는 실험을 하기도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요구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뽀로통하게 지하실에 쭈그려 있기로 결심했다.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동물들 _ 돌고래는 인간보다 지능이 높아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쥐 역시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이다. 인간만이 지구에서 자신들이 제일 지능이 높은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돌고래들은 자신들이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다고 항상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정확히 똑같았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돌고래들은 지구 행성이 곧 파괴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인간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하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당신이 쥐라 부르는 그 생물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달라요. 그건 비상하게 초지능적이고 범차원적 존재들이 우리 차원으로 튀어 들어온 형상에 불과하다오.


#레스토랑에서 직접 부위를 고르게 하는 짐승(?)_ 짐승이 말을 하며 부위를 권하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인공지능이 마음을 갖는 경우가 떠올랐다. 식육을 위한 동물이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된다면 정말 힘든 상황이 펼쳐질 것 같다.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 아주 인간적으로 할 테니까요. “ 짐승이 말했다. 짐승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뒤뚱뒤뚱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왜 이 책일까?   


엉뚱한 상상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우주와 지구의 생성과 소멸도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삶과 우주,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려 하는 건 부질없는 일일까 싶다. 삶에는 끊임없는 변수가 존재한다. 내 삶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일들은 전혀 예기치 않는 가운데 일어나고, 그 일은 나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현재에 가장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상황에 뚝 떨어지듯이 전혀 예상 밖의 상황에 매번 놓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도 비슷하다.


이 책에는 SEP(Sombody Else's Problem.남에게 생긴 일)라는 말이 나온다. 나의 일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내게 다가오는 의미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일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 나에게는 내 모든 일상을 잠식해 들어갈 정도로 삶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삶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하고 큰 사건이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소설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게 하는 경험이 그 간극을 줄여준다. 그러니 문학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과연, 지구는 어떤 가치가 있는 곳일까? '대체로 무해한' 이곳은. 요즘 내가 고민하는 문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부조리한 우주에서 개연성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일상에 대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하여, 나도 내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보고자 한다.



촘촘한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0

교훈과 감동을 기대한다면:  0

B급 영국식 유머를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다면: 5 ★★★★★
지구가 곧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4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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