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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Oct 09. 2020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큰 아이가 네 살 때의 일입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다가 문득 아이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엄마를 좋아한다면, 특히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건지 알고 싶어졌지요.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과연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넌 엄마의 어떤 점이 좋아?"


 질문을 받은 아이는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 네 살 아이가 대답하기에는 쉽지 않은 질문이겠구나 싶었지요. ‘맛있는 음식을 주어서 좋아’라고 대답하려나? 아니면 ‘나랑 놀아주어서 좋아.’ 혹은 ‘엄마와 숨바꼭질을 할 때 좋아.’라고 대답하려나? 제가 예상한 답변은 이 정도였습니다. 아이는 대답을 결심했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의 손은 제 입가를 향했습니다.


 "난 엄마의 이 점이 좋아."


 그건 코와 입술 사이에 있는 저의 점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경험 다들 한 번씩 있으시지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답변에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이런 순간의 기분을 잊지 못해서일까요?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 중에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 대견함과 미안한 마음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해두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화와 소통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흔히 "저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무엇이 사람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것일까요? 대화란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지만 이 대화들이 항상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소통이기는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을 확인하는 목적의 대화도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매개로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해서 남겨주고 싶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가끔은 지나가는 말처럼, 어떨 때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시간을 일부러 할애해서 토론을 했다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지나가듯이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놀랐던 건, 우리가 흔히 아이들이 뭘 알겠어? 라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도 각자 자기만의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려고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몇 해 동안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에 꾼 꿈이라면서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꿈의 줄거리를 20분이 넘도록 들어주어야하는 날도 있었지요. 아이는 책이나 영화의 줄거리 역시 며칠 밤을 이어서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면 늘 집중해서 들어줄 수는 없었지요. 바쁠 때는 "조금 짧게 이야기 해줄래?" 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성의 없는 맞장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항상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그러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자기 전에 잠자리에 함께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를 나눈 내용을 기록해온지 어느덧 6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적은 글을 읽어보면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어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점점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며 자라가고 있는데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주어야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엄마'란 특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건 그렇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엄마이기 때문이었지요. 이러이러해서가 아니라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허지원 교수는 「좌절에 대처하는 방법: 비출산의 심리학적 기제와 기능」에서 부모의 불완전함도 아이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좋은 주 양육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면 된다고요. 그 글을 읽으며 너무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사이만 되도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 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일 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6년동안 무엇보다도 책을 읽고 아이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저 모두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엄마가 될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왔는데 지금은 이렇게 대답해보려고 합니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던 엄마였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노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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