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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Oct 19. 2020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힘들 때  

솔직한 글이 가지는 매력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워요_ 자기 검열의 덫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의 일기장은 일종의 ‘데쓰 노트’ 같은 기능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저주와 분노를 퍼붓는 용도로 글을 썼다. 그렇기에 일기를 누군가 읽게 될까봐 항상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보지 못하게 항상 열쇠를 잠근 다음에 (일기장에는 열쇠와 자물쇠가 붙어있었다) 다시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아무도 당시에 왜 이런 악담을 퍼부었는지 뭐라고 했던 사람이 없던 걸 보면 누구도 내 일기장을 본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내면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쓰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에세이와 같은 글을 쓰는 일이 특히 어렵다.  작년에 원고를 내고 심사를 (면접의 방식으로)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들었던 평가 중, 글이 너무 'easygoing' 하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히 삶의 과정 중에 겪었을 어려움이나 힘듦과 같은 부분이 있을텐데 그런게 글에 드러나지 않으니 그런 부분을 좀 더 써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아마 이런 부분은 나의 성향과도 직결되어 있다. 나는 누군가와 갈등상황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자기 검열을 많이 한다. 혹시 이 글이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나 들여다보고 문제의 소지가 있을 법한게 있으면 모두 삭제해버린다.


 되도록이면 그냥 무난한 내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깔려있다. 또 내면의 깊은 이야기나 사연을 드러내는 게 구구절절하게 느껴졌다. 이 내용을 다른 사람이 읽게 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되는 이야기만 걸러서 쓰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 나를 둘러싼 타인의 이야기, 내가 알고 있거나 들었던 내용 중 가장 안전하고 별 문제가 없는 글을 쓰는 태도가 솔직한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최근 몇 편의 에세이들을 읽으며 느낀 점은 요새 글의 트랜드 중 하나는 '솔직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글들이 주는 매력이 있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저자와의 심리적 거리도 한결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솔직한 글을 몇 편을 읽다보니 자극이 되면서 좀 더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성향을 바꾸거나 글쓰기의 스타일을 완전히 다르게 해서 쓸 수는 없다. 조금씩 글쓰기의 외연을 넓혀나가면 어떨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의 글쓰기를 계속 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치부’라고 생각했던 내용을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만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처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검열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글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는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자기 검열의 과정은 필요하며 이를 스스로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를 드러내고, 꺼내어놓는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좋은 글’이 뭘까 생각해봅니다.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너무 부끄러워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 그것들을 글로 썼을 때 글쓰기의 신비로운 작용, ‘치유’를 경험합니다.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느냐는 나를 얼마나 꺼내놓을 수 있느냐와 같은 말인 것 같습니다. 바빠지더라도 종종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본 후 길어 올린 이야기들로 (가능하면 읽으시는 분들까지) 건강하게 가꾸고 싶습니다.

장소연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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