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일곱 살 때, 대형 쇼핑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문 앞에 장난감을 파는 자동판매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장난감 몇 개를 뽑은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 매장으로 올라갔다. 매장에서 계산하려는 순간 돌아보니 쌍둥이 중 형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일곱 명이었는데 누구도 아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근처에 있으려니 생각하고 매장 주변을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이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매장 직원에게 안내 방송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런 시설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30여분이 지나자 불현듯 절망감과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아이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앞이 캄캄해져 왔다. 직원들과 함께 아이를 찾으러 분주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3층의 인포메이션 센타에서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까지 내려갔었다. 아마도 아까 올라오기 전에 건물 바깥에 있던 자동판매기가 생각이 나서 이걸 해보려고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3층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에 무서워졌던 것 같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어떤 분이 인포메이션 센타에 데려다줬다고 한다. 발견한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야단을 치거나 하진 않았다. 찾았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였다. 아이는 무언가에 몰입하게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아이를 잃었던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단편 중 「아이를 찾습니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윤석과 미라는 세 살난 성민을 데리고 마트에 간다. 성민을 쇼핑 카트 위에 태운 부부는 각각 휴대폰과 화장품에 잠시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잠시 후 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깨닫게 된다. 놀라서 아이를 찾지만 성민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십일 년의 시간이 흐른다. 미라는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조현병의 증상이 생기고, 윤석은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둔다. 예상치 못했던 불행은 부부의 삶을 나락으로까지 떨어지게 만든다. 십일 년 만에 대구에서 걸려온 전화. 자신이 유괴당한지 조차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온 성민을 데리고 경찰관과 복지사가 찾아온다. 하지만 성민은 그 전에 알던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을 유괴한 여자를 엄마로 믿고 살아왔고, 그녀가 자살하자 충격에 빠진다. 집으로 온 성민은 남보다 더 낮설고 불편하다. 성민 또한 윤석과 미라를 친부모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게임에만 몰두한다. 윤석은 아이만 되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지만, 오히려 현실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어디서 풀어야할지조차 알지 못한다. 윤석은 자살을 결심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 것은 성민이 피시방에 가있는 동안 문을 부수고 나와 산으로 가다 발을 잘못 딛은 아내 미라였다. 윤석은 미라의 죽음 이후 성민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성민은 가출하고 만다.
우리는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작가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우리 인생에 벌어지게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만약 내가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면 어떠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를 되찾기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다가온 현실은 그 이전보다 비참하고 암담했다. 이전까지는 “아이를 찾으면” 이라는 희망이라도 안고 살아온 시간들이었지만 아이를 되찾은 후에는 어떤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은 비극적 시간만을 견뎌내야만 한다. 인생에서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이제는 버려야만 하는 시점이 된 것일까?
이 소설의 서두와 결말은 윤석의 ‘손’으로 연결되고 있다. 윤석은 카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십일 년 동안 자책해왔다. 소설의 결말에서 어느 날 윤석에게 보람이라는 소녀가 찾아온다. 성민이가 사라질 때 같이 사라졌던 아이였다. 보람은 성민이가 자신의 돈 오백만원을 가져갔다고 말하고 윤석은 방에 들어가 버섯 판 돈을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보람은 사라지고 베이비시트 안에 갓난아이가 성민의 아이라는, 잘 부탁한다는 메모지와 함께 남아있을 뿐이다. 성민은 “아이의 양손을 놓지 않은 채 그는 오래도록 평상 위에 앉아 그에게 찾아온 작은 생명을 응시” 한다.
이 결말을 희망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나는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회복 불가능한 일이 닥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견뎌내는 일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다시 일어나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고 이어지는 거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살면서 우리에게 벌어질 수도 있을 비극적인 상황 이후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의 삶이 마치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사실 허물어지기 쉬운 사상누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삶은 예기치 못한 일로 순식간에 깊은 암흑과도 같은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아무도 묻지 않은 "그 이후"를 묻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가의 질문이 새삼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