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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Nov 23. 2020

책으로 가득 찬 집과 종이책의 미래

 아버지는 책탐이 많으셨다. 신문이나 책 저널, TV방송에 소개된 책 가운데 어느 한 대목만이라도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그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셨다. 돈만 생기면 책방에 들러서 사고 싶은 책을 꼭 사셨다. 그러기를 50여년간 해오시다보니 거실과 두 방에는 1만2천여권의 책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지금은 절반 이상을 처분하였다.) 


 책이 많아서 생긴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30년 전에 아버지가 지방에 내려가 계시는 기간에  집에서 반상회를 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온 이웃분들이 서재의 책을 보고  '집안에 이렇게 무거운 책들이 쌓여있으면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항의를 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전남대학교 건축공학 연구소에 자문을 구해 붕괴 여부에 대한 진단을 받아 안전증명 발급을 받으려고 하셨다. 연구소에서는 만여권의 책때문에 아파트가 금방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증명서도 발급해줄 수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할 수없이 그 중 4천권의 책을 골라내어 지방 도서관에 기증을 하셨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제일 먼저 반기고 인사를 하는 존재가 책장 속에 가득차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셨다. 소장하고 있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해도 책장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다.  


 어느 날 책장에 가득한 책을 보시면서 내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미래에도 사람들이 종이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시는 전자책은커녕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던 시기였다. “모든 정보를 압축해서 저장하게 되더라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겨우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일어난 변화와 발전의 속도는 눈부셨다. 예전에 ‘미래의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의 제안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매해 작가 한 명씩을 선정해 비공개 원고를 받은 후 백년 후인 2114년에 원고를 개봉해 책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는 5번째 작가로 선정됐고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미래도서관 숲에서 열린 원고 전달식에서 흰 천으로 싼 원고를 전달했다. 


  이 기사를 읽으며 2114년에도 종이책이 출간되고 있을지를 상상해보았다. 그때도 인류가 종이책을 계속 읽고 있을지 확언할 수는 없다. 한 가지 희망적인 근거는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저장 장치 중 백년 이상 동안 보관 가능한 건 없었다고 한다. 디지털 환경이 계속 교체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학위 논문을 저장했던 디스켓을 지금은 사용할 수조차 없다.


 종이책은 몇 백년 이상도 보관이 가능하다. 전자책은 편리하지만 책을 읽은 후의 여운을 간직하게 해줄 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계속해서 디지털 환경을 변화시켜 미래로 나아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에 대한 선호도 남아 있다. 첨단 기술이 많은 것을 바꿔나가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게 존재하지 않을까. 책장을 직접 넘기며 만질 수 있는 책이 좋은 나는, 백년 후에도 종이책이 살아 남아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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