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안녕.
엄마,
엄마가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나는 서른이 넘었다.
내가 스물한 살 때였으니 참 오래됐구나.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만으로 열아홉이었다. 아직 완전히 어른은 아니었다.
게으름을 마음껏 발산하며 철없고 재밌게 지내던 대학교 2학년, 그날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해가 뜰 때쯤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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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 아빠의 전화가 와서 잠결에 넘겨버렸는데 거푸 전화가 울린다. 아침이 오기 아직은 먼 새벽시간. 아빠가 이럴 성격이 아닌데 하면서도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고 다시 잠을 청한다.. 오 분쯤 지났을까? 다시 울리는 진동과 함께 전화기에 뜨는 언니의 이름. 나는 이 전화도 넘겨 버리다가 문득, 요양병원에 오래 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 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폴더폰을 연다. 언니의 문자가 와 있다.
엄마가 죽었단다.
이어지는 내용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죽음의 이유.
엄마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 없어진 엄마의 가방을 찾으러 다니며 엄마의 생전, 그러니까 엄마가 죽기 얼마 전의 행적을 좇으면서 언니와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미리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슴이 예리한 칼날로 베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만 들었다. 엄마 가방에 있던 담배를 아파트 구석에서 피웠다.
엄마,
나는 지금도 영화를 보거나 ‘엄마’ 가 소재로 쓰이는 어떤 것을 볼 때도 별로 슬프지 않다. 심지어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후에도 선배랍시고 후배들을 데리고 농활을 갔다. 그런데 유난히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예를 들어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가족 관계를 솔직히 말해야 하거나 취업 준비 때 면접관이 가족관계에 관한 질문을 하고 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 심지어 취업 스터디를 하며 모의 면접을 할 때조차 ‘엄마’라는 단어를 내 입으로 발음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오면 말이지..
처음 몇 년은 눈물이 흘렀고 나중엔 목이 메었으나 참을 만했고 그 후로는 목소리가 떨려 말을 잇기 어렵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나는 이제야 조금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에 기가 막힌다.
나는 참 늦게야 엄마의 외로움을 아주 조금 이해한다. 들어주기에도, 도와주기에도, 늦어도 너무 늦어 버렸다.
그리곤 그러지 말아 야지, 라면서 엄마의 행동을 답습한다. 외로움에 못 이기는 날엔 술을 마시고 그런 날의 빈도는 점점 잦아져 거의 매일 술을 마시기도 한다.
엄마, 그런데 나는 살 것이다. 몇 번이나 날 지나쳐 간 죽음의 유혹 앞에서 나는 늘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깊이 노력해 왔다. 두려웠지만 혼자 여행을 떠났고, 부끄러웠지만 나의 역사를 타인에게 솔직히 말했으며, 외로움이 깊어져 괴로움이 되어버린 소용돌이 속에서 책이나 영화 같은 이런저런 것들에 붙어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오길 여러 번이었다. 필요할 땐 병원을 찾아가고 약을 먹기도 했다.
그 날, 그러니까 엄마의 죽음을 듣고 첫 배를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차가 있는 선배에게 터미널까지 태워 달라는 전화를 했던 그 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선배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데요..'라고 인사하듯 말했던 그제야 터지던 울음. 그리고 다시 잠잠해지던 감정. 그날 배는 유래 없이 거친 파도에 휩쓸려 미친 듯이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승객들은 토를 해댔고, 슬픔이라기엔 너무나 갑작스러워 황망하기 그지없어, 마치 그러면 안될 것 같던 나도 토할 것 같았다. 이를 악 물며, 고인 침을 삼켜가며 참았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잡아 타고 ‘대우병원이요’ 할 때 든 먼저 생각이 택시비 걱정이었을 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목적지에 다 왔을 때쯤 응급실로 가려는 기사분께 장례식장 앞으로 가자고 말씀드리니 기사분이 아침부터 누가 돌아가셨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고 대답하며 택시비를 주섬주섬 챙겨서 냈다. 백미러로 내 얼굴을 보며 '허...' 라며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기사님이 잔돈을 손 위에 올려 주었다. 나는 지폐와 동전을 손에 움켜쥐고, 그리고 무서운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말, 믿을 수 없어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장소. 엄마의 장례가 준비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