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자

그리고 마음의 감기도 병원에 가자

by 떠돌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대로 집에 가면 술을 마실 것이 뻔하다.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정신을 못 차려 회사에 연차를 낸 것이 3월만 세 번이었다. 지난달 회사에서는 희망퇴직을 접수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임에도 속절없이, 현실의 육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내 정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과 상실감은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키는데, 내게는 주로 폭음과 폭식이 아주 심각하고 주된 증상이며, 두통과 피부 민감 같은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전 회사는 남초 직장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내 별명은 ‘산적’이었다. 엄청난 양의 고기와 술을 먹어 치우는 나를 보며 동료와 사수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나의 먹는 모습과 기괴하리 만치 많은 양을 보더니 사극이나 대하소설 어디쯤 흔히 나오는 “술과 고기와 여자를 내놓아라~”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내게 라면은 다섯 개가 한 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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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짓을 다해봤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려라, 그건 의지의 문제이며 네 정신력이 약해서다.. 등등 이 같은 말은 상황 개선에 저언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의 주장과 연구 결과가 많은 양과 다양한 방법으로 엄연히 존재함에도, 쓸데없으므로 하나마나 한 저따위 말을 얹는 인간들이 꼭 있다. 아이고, 그럼 암 같은 질병도 내 몸의 면역 의지가 약한 거겠네요? 한마디로 건강관리 노오력이 부족하단 말씀이죠?라고 저들에게 되물어 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같다. 각설하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다른 것에 집중하기'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던 경험도 있어 (그때는 증상이 가벼웠을 것이다) 마음의 질병이 정말로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여 그 말들을 몸소 실천해 보았다. 아무래도 몸이 건강하면 마음이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1. 퇴근 후 3~4 시간 씩 달리기를 했다. 잠은 오지 않았고 불면증은 지속 상태였으며 십만 원을 넘게 주고 산 러닝화는 보름이 조금 지나 속절없이 낡아 떨어졌다. (메이커 러닝화!! 아..) 무릎 연골도 사이좋게 나갔다.

2. 무릎이 나갔는데 손목과 어깨 (정확히는 승모근 쪽) 까지 너무 아팠다. 러닝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그런가? 근육통과 피로로 컨디션이 아주 엉망이었다. 육체의 고통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가중치가 더해졌다.

3.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가 생긴다. 아.. 날로 먹을 줄 알았는데 숙제 왜 이렇게 많은 건데.. 벼락치기는 왜 안 되는 건데..ㅜㅜ

4. 방송통신대에서 만나게 된 같은 과 회장, 부회장이 날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했다. 이건 다른 이야기에 풀 생각인데 아마 내가 대학교 때 학생회 경험을 말한 적이 있어 그네들 단체에 함께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무튼 입이 방정이다.

5.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고 말하던) 아줌마의 공방에 가서 열심히 공예를 배웠다. 그중 클레이가 손과 눈에 잘 맞았다. 손을 쓰는 일이라 집중도 최고! 신남! 근데 갑자기 눈물이 툭 흐르고 콧등이 시큰거린다. 아.. 도움된다면서요..


의사들이나 연구기관들이 밥 먹고 쉰 소리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치료가 필요할 정도라면 유의미한 도움이나 치료가 되지 못한다. 병은 치료받아야 한다. 경험자로서, 내 글이 신경정신과나 기타 클리닉에 대한 진입장벽을 조금 낮추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쉽게 말해 내가 생각하는 '병원에 갈 정도의 기준' 은 간단하다.

'생활에 불편을 느끼면 병원에 간다' 당연해서 더 말할 것도 없는 명제다.


감기가 참을만하면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자가 치료를 하지만 상태가 심각하면 병원에 가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치료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이 불편함을 초래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자.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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