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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May 18. 2018

여권 3-1

피할 수 없는 위험

루마니아는 왠지 환상의 나라였다. 이름부터 독특하지 않은가 루마니아. 주변에 루마니아를 여행해 봤다는 사람도 아직 내 주변엔 한 명도 없다.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새벽 내내 방 안이 환해지도록 번쩍이는 거대한 번갯불과 천둥소리 속에 난생처음 느끼는 오묘한 기분으로 앉아 있으면 공포와 함께 블라드 드라큘, 집시, 마녀.. 모든 단어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매력적인 공포의 향연.


루마니아의 시기쇼아라에는 7월에 큰 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많은 집시가 산다. 집시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축제에 온다.


혼자 다니는 여행인 만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데 "해가 진 이후엔 혼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날은 호스텔 스텝인 루미와 저녁 7시에 만나 축제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가 오지 않는다. 마을은 축제로 요란하다.


축제가 벌어지는 마을 중심의 언덕

마을 중심 언덕으로 올라가 본다. 순찰차도 많고, 조심히 다니면 될 것 같다. 제일 시끄러울 것 같은 곳으로 가기 위해 센터에서 내려와 계단을 내려온다. 그 순간 누가 엉덩이를 쓱 만진다. 스치는 게 아니라 분명 만진다. 그리고 한 손이 내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이 내 볼을 쓰다듬는다. 이 모든 일은 약 3초 정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스탄불의 기억이 떠오른다. 생생한 성추행의 기억, 더듬던 손과 이후 괴로웠던 나날들.

불가리아에서 만난 세계여행 커플 언니에게 숙소에서 당한 성추행에 대해 토로하며 대처 방법을 물으니, 그럴 땐 바로 경찰을 부를 것을 강력히 요구 한 뒤, 다음날 아침 바로 체크아웃하라는 것이다. 계산은요? 계산은 무슨 계산. 보상금 받아도 모자랄 판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구 패주라고 했다. 그래야 이렇게 계속 생각나고 괴로운 게 그나마 덜하다고. 막상 상황이 닥치자 너무 두려워 몸이 굳는다. 날 더듬는 손과 얼굴을 쓰다듬은 손의 주인은 두 명이고 얼굴을 보니 백인이 아니다. 딴에는 차림에 멋을 냈으나 지저분한 행색에, 얼굴 생김새가 부분명 한 집시다. 비슷한 얼굴을 한 몇 명의 소년들이 실실 웃으며 주변을 배회하며 망을 봐주는 듯 이 상황을 구경한다. 이 넓은 마을 중심의 계단에, 공교롭게 사람이 몇 없다. 침착하자.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지금 제대로 하지 못하면 더 괴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깨를 두른 팔에서 빠져나와 주먹으로 있는 힘껏 그놈 어깨를 때리고 발로 엉덩이를 걷어찬다. 세게 맞았다. 그놈이 웃는다. 볼을 쓰다듬던 다른 놈이 놀리는 듯 한번 더 얼굴을 만진다. 나는 발차기를 시도하고 발 끝에 분명히 맞았을 이놈도 웃는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근데 이놈의 무리들이 곳곳에 있다. 사람이 많으므로 별 다른 짓은 하지 않지만 곳곳에 놈들이 있다. 다른 지름길이 있는지 계속 계속 놈들의 얼굴이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향한다. 이 마을의 호스텔은 단 두 개. 이놈들은 내 행선지를 알 것이고 거리가 멀지 않지만 너무 어두운 구간이 많다. 도움이 필요하다. 내 앞의 순찰차가 날 스쳐 지나간다. 따라잡을 수 없이 벌써 가 버리는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나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동행을 부탁한다. 그녀는 2명의 남자 동행과 함께라며 흔쾌히 날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한 명의 남자가 나와 나란히 걷고, 나머지 남녀는 뒤따라 걸어와준다. 드디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조금 더 걸어가, 이 강만 건너서 조금 걸어가면 호스텔이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왔고, 이 축제를 구경하는 중이라며 오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강을 건너고, 어두운 강변을 걷는다. 조금만 더 가서 우회전하면 호스텔이다.


사진의 이 장소. 밤이 되면 다리 양 옆길엔 가로등이 없다 사진의 왼쪽 길을 걷는도중 봉변을 당했다


타타타 타탁 뒤쪽에서 들리는 뛰는 발소리,

무언가 번쩍, 하는 느낌과 함께 오른쪽 어깨와 머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잠깐 느낌이 없다.


눈을 떠 보니 나는 길바닥에 누워 있고 프랑스인 일행이 괜찮냐는 말을 반복적으로 묻는다.

이게 뭐지? 카메라 줄을 감고 있던 왼쪽 손목도 아프다. 카메라는 귀퉁이가 찌그러졌으나 내 손안에 있다. 내가 잠시 기절했었다며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들이 들려주는 상황은 이랬다.


아마 곳곳에서 나의 동태를 파악했을 집시 놈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제일 으슥한 곳에서 날 기다렸을 것이다. 놈들은 이 작은 동네를 잘 안다. 이 동네엔 호스텔이 두 개 밖에 없다. 하나는 언덕 위에 있으므로 따라서 내가 갈 동선도 딱 하나 남은 이 길. 적당한 장소에 숨었다가, 번개같이 뛰어나와 뒤쪽에서 내 오른쪽을 합판 같은 것으로 날 내리치고 그대로 달려가고, 다른 한 놈은 내 왼 손에 묶인 카메라를 훔쳐가려 했으나 손목에 감겨있는 상태에다가 내 옆의 일행 때문에 시도가 먹히지 않자 그대로 달려 도망갔고 또 다른 한 명은 나를 보호해주던 프랑스인의 양 주머니를 뒤에서 한 번에 손을 넣고 뒤졌단다. 그리고 그 셋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단다. 뭔가로 가볍지 않게 가격 당한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는데 (합판 같은 것), 몇 초 동안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손 발 까진 곳이 따가웠는데, 나와 동행해준 프랑스 은인이 "오 마이 갓"을 외친다.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숙소로 겨우 돌아와, 프랑스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정신도 없이 호스텔 대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는다. 마당 테이블에 앉아있던 호스텔 스텝들이 뭐하고 왔냐고 놀리듯 묻는데 울음이 터진다. 놀란 닉(호스텔 주인) 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다가, 어둠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상처들을 보곤 놀람을 넘어 흥분하며 경찰을 부르고, 나를 달래듯이 안아준다. 나는 울먹거리며 짧은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찰떡같이 알아들은 닉은 다시 한번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빠른 출동을 재촉하며, 상황을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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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 축제 시기에 집시들은 한탕하기 위해 깔끔하게 단장하고, (심지어 집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특유의 생김새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분장도 한다, 또 이 축제는 많은 이들이 가면을 쓰고 다닌다!) 마을로 중심으로, 축제 장소로 몰려든다고 했다. '한탕하러 오는' 집시들 때문에 가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며, 내가 기억하는 "줄무늬 옷을 입은 집시"는 한두 놈이 아니었다. 옷은 갈아입으면 그만이고 하고 좁은 장소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온 이들의 얼굴은 다 비슷했다. 내 진술을 들으며 조사를 하는 경찰에게 매달려 따라가고 싶었다. 너무 무섭고 막막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중에 루미와 닉이 말했다.

" 너 진짜 큰일 날 뻔한 거야. 그 놈들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럴 땐 도망치는 게 상책인데, 그 집시들이 너 칼로 찌르고 강에 던져 버리면 시체는 못 찾고 증거도 없고 그냥 끝인 거야.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휴....."


이 말을 들으니 이 상황이 종료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며 더욱 큰 공포감에 압도된다. 이 마을에 동양인은 나 하나고, 그 놈들은 나를 언제 어떻게 노릴지 모른다. 


돌아가고 싶다 집으로.

무서워 죽을 것 같다.


이놈들이 언제 어디서 날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온갖 프로그램을 깔아봐도 한글이 되는 컴퓨터 한 대 없는 작은 마을, 비행기 표를 바꿀 수도 없다.

정들었으나 이젠 공포스러운 이 장소를 떠날 준비를 한다.


정신을 좀 차리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날 도와줬던 그 프랑스인들 연락처라도 받아 둘 걸. 허겁지겁 들어오느라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말, 생명의 은인들이다. 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들을 위해 진심의 기도를 올린다. 루미와 닉은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굉장히 잘 한 일이었으며, 아마 그들이 없으면 더 큰 봉변을 당했을 거라고 한다.


집시들의 성추행에 대한 대처 방법과 관련해, 나는 굉장히 그릇된 판단을 했다.

적어도 "분이 풀릴 때까지 마구 패주는" 것은 나의 상황에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내게 대처 방법을 알려준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여행 중이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즉 내가 누군가에게 위해를 당할 때 지켜줄 이가 없으며, 혼자인 여자 여행객, 그것도 얼굴도 낯선 동양인 여행객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만만한 상대임을 간과했다. (이후에도 이 마을에서 시장을 볼 때 몇몇 사람들이 날 신기하게 쳐다보며 갑작스럽게 만지기도 했는데 그 행동이 잘못된 걸 모르는 정말 시골 사람들이었다. 서양인을 처음 보고 놀랐다던 조선시대 말기의 사람들도 그랬다고 하니, 화를 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위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계속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조차 괴로웠다.)


이 여행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참을 수 없이 침울하고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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