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의 주인공이었던 시간
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강렬했던 감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너를 만나면서, 특별할 일 없어 평생 무채색일 것만 같던 내 인생에 이렇게 반짝반짝 행복한 날들이 있구나,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이런 행복이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공개된 채 남아있는 옛 미니홈피의 글에는 살다 보니 이렇게 행복한 날이 다 있다며 너와의 연애에 대한 행복한 감정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내게 헌신하는, 너는 정말 괜찮은 남자 친구였다.
사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는 우리가 만나기 전 이미 계획했던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고, 나는 얼마 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너는,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와중에도 나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에서 태국으로 날아와 주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 여행 한 모든 시간이 꿈결 같았다.
여행이 끝나고 너는 뉴질랜드로 돌아간 후, 함께 여행했던 동안 나 몰래 찍었던 나의 사진, 우리의 사진, 풍경이 담긴 사진들을 인화하여 뒷면에 편지를 써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나도 모르게 찍힌 나의 사진들 뒷면에 네가 절절하게 써놓은 글귀들은 내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때에도, 우리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통화를 했다. 한국의 내가 늦은 새벽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들어갈 때면 뉴질랜드의 너는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해 내 귀갓길을 챙겨 주는 것으로 나는 하루를 끝내고 너는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 날 네가 갑자기 죽는 꿈을 꿨는데 그 느낌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네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헛헛하고 말할 수 없이 허망하던지 나는 시차를 무시하고 네게 전화를 걸어 너의 안부를 확인했다. 안심이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당부했다. 제발, 제발 꼭 조심하라고. 꿈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나는 네가 없으면 얼마나 괴로워 질지 알게 되어 버렸으므로. 그만큼 너를 사랑했다. 너는 나를 말 그대로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너는 울고 웃었다. 나는 함부로 살수도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내가 취준생일 동안에도 너의 헌신은 계속됐다. 함께 살던 언니에게 나모르게 연락 해 집에 들어와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채워주고 가기도 했고 취업 후에도 잠든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해 가며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언니 역시 그런 너를 참 이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게 그렇듯, 행복의 이면에 예감되는 불길한 느낌은 못 본 척하거나 잠시 접어두고 싶어 한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 같은 핑계로. 혹은 이 완전해 보이는 행복에 방해가 될까 봐. 이 행복을 깨고 싶지 않은 이유로.
우리가 연인이 되기 전, 우리는 꽤 괜찮은 친구였다.
너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잘 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낯간지러운 칭찬도 아무렇지 않게 했고, 타인을 과하다 싶게 챙기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했다. 그 친절함이 고마웠지만, 그런 너를 유심히 볼 수록 나는 네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연애 초반, 나를 보기 위해 뛰어오는 행복한 얼굴의 너를 보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나는 너에게 솔직히 말했다. 너는 그때, 솔직함이 최고의 가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던 때였다. 너에게 솔직함을 보이길 원했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너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같아.
.
.
.
그래, 물론 나에 대한 사랑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분명히 보이는 것, 너는 사랑에 빠진 너의 모습에 도취된 것 같았다. 중간중간 우리를 거쳐간 시련 조차 너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힘들어했으며 그것조차 사랑했다.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너는 '사랑'의 범주 속에 있다면 무엇이든,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
.
.
.
.
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나 때문이었다.
그렇게 잘 해 주었던 너를 두고, 나는 첫 입사한 회사의 동료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을 너에게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