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왜 방송대에 갔을까, 개인주의자의 눈에 거슬리는 '일상적인' 것들

by 떠돌이

나는 현재 원격수업을 주 수업으로 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다니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길어진 기대 수명과 더불어, 전공 공부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인생의 AS 가 필요하단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의 수학 이유 역시 업무와 관련된 실제적 필요가 그 이유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성적도 별로였던 나는 무사히? 전공에 맞추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숫자, 금액 따위를 직접 다룰 일이 크게 없었다. 가끔 관련 업무가 있다 해도 내가 책임지고 완료해야 하는 분야는 아니었기에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 문제는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 1) 다루는 업무가 타전공 위주였고, 2) 부서 특성상 경제학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3) 나는 사칙연산을 너무 못하는 인간이라는이었다.

기 졸업한 전공 특성상, 이론이나 수식은 어느 정도 낯이 익었지만 회사의 또 다른 언어인 회계는 그야말로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다. 나부터 이해 못하는 재무제표를 고객에게 한글도 아닌 영어로 설명해야 할 때, 나는 내 언어 실력의 빈약함과 재무, 회계에 대한 무식함까지 골고루 겸비한 나 자신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방통대에 호기롭게 편입하여 3학년부터 시작했다.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지!) 1학기 등록 시기를 놓쳐 2학기부터 시작했는데 아.. 열심히 하겠다는 나의 다짐과 달리, 기초 없는 내게 3학년 편입은 무리 데스였다. 결국 2과목이 과락되었다. 날로 먹을 것이라 예상했던 처음과는 달리 객관식 기말 시험이 70%인 성적 산출 시스템은 공부 안 하는 사람에겐 과감히 과락을 선사한다. 그리고 대학생 때와 다른 건, 벼락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시간도 체력도 없어진 지 오래이므로.. *매우 중요 포인트다*

그래서인지 방송대를 다녀 보면, 성적을 잘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게는 졸업을 목표로 한다.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겸하는데 4년 안에 과락 없이 졸업하는 것만 해도 큰 성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늘 좋은 성적을 받는 분들도 있다. 주로 개인 시간이 많은 사장님이시거나, 현업 종사자 이면서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오신 분들이 그렇다. 이런 분들에게 대부분의 수업은 기초 중의 기초 이론일 테니,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만 봐도 부러울 정도였다. 나는 정말이지.. 출석 수업 때 의욕만 앞서 맨 앞자리에 앉아, 모르는 단어의 홍수를 헤매며 바보처럼 졸기만 한 뒤로 절치부심 영상 강의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선물, 풋옵션, 주식투자, 함수, 레버리지.. 원가회계.. 아.. 숫알못(숫자알지못함) 에게 던져진 가혹한 형벌이여...ㅜㅜ






출석 수업은 한 학기에 보통 3번 정도인데, 같은 과 사람들을 볼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학기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않아 이때 처음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텄고, 같은 수업에 학과 부회장이라는 분과(50대, 이하 A로 칭함) 나중에 학회장이라는 분까지 (40대 중반, 이하 B로 칭함) 만나 친해졌다. 사는 지역이 같아 자주 만나고 시험공부도 같이 했다. 늘 인력부족을 겪는 학생회의 상황을 경험자로서 잘 알기에 이 분들을 도와드리려 애쓰고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만남이 거듭 될수록, 자리는 불편하고 불편해졌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잠깐 언급한 글이 있는데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https://brunch.co.kr/@anindivisualist/3


우선 나와 가장 많이 만난 부회장이라는 분은(A) 내 또래의 딸이 있는, 말 그대로 엄마뻘이었다.

학회장 B는 콤플렉스가 심해 그 모습이 겉으로 잘 드러나는 사람이었는데 A로서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데다 변덕까지 심한 회장을 보좌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았다. A, B, 나 이렇게 셋이 잘 만 밥을 먹다가도, B가 화장실을 간다거나 잠깐 자리만 비우면 그의 욕을 하는데, 그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면이 없진 않았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홀아비 냄새난다, 나이가 저런데 누굴 만나 등등의 인신공격은 진심으로 듣고 있기가 힘들었으며 웃긴 건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서로 학교 일 외에도 긴밀히 연락하며 잘 지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셋이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어 나를 학생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쇼가 아니었나 싶지만, 쨌든 그렇게 잘 지내는 듯 보였고 또 B는 대놓고 누님뻘인 A의 욕을 하지는 않았다. 덧붙이자면, 대부분 나이대가 있는 학과 구성의 특성상 A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나의 여성성이나 젊음을 미끼로 소비하려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B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갑자기 A에게 전화가 왔다.

B의 욕을 하다가, 또 자신의 맘을 몰라주는 학생회 임원들(나는 전혀 모르는) 욕을 한참 하다가, 남편이 왔다며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자다가 받아서 너무 뜬금없었음) 그냥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다.. 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학교 모임이 끝난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날 봤던 임원 중 한 명의 신상부터 연애, 결혼 스토리와 어떻게 임신을 했는지, 시댁과의 마찰이 어떤지를 자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화제가 된 그 임원은 아마 잘 따르는 언니라며 A에게 모든 고민 상담을 한 것 같았는데 그 이야길 제 3자인 나에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던 나는 30분이 넘도록 이어지는, 어떤 이의 매우 개인적인 사생활 이야기를 낱낱이 들으며 입을 다물어야 할지, 어떻게 맞장구를 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비단 그분뿐만이 아니었다. B가 일이 생겨 수술을 받는데 소변줄을 꼽느니 소변통을 받아줘야 하느니 어쩌니..(제발 좀!! 듣고 싶지 않다!!) 입원을 해서 직장이 어떠니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대체 나한테 왜 하는 거지? 싶다가도 모든 대화가 그런 패턴이다 보니,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습관 같았다. 남의 이야기를 끝없이 해대는 습관. 그냥 입이 가만있지 못하는, 걱정하는 척하며 남 이야길 종일 해대는 습관. 맘에 안 들면 수다를 가장 하여 자기의 감정을 타인에게 푸는 행동. 그러한 행동이 잘못이란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믿었기에, 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했을 사람들과 그녀에게 고민 상담을 했던 사람들이 자기 신상이나 고민을 제 3자에게 낱낱이 폭로당했단 사실을 알아도 과연 아무렇지 않아할까? 그녀에겐 남의 사생활을 마구 소문내고 다닐 권리가 과연 있는가? (당연히 없지)


그녀의 행동을 보며 나는 안다. 분명 내 이야기도 어디선가 회자되고 있으리란 걸.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누가 나에게 남 욕하면 남한테 내 욕 할 가능성 100%라고.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근거 있는 명제이다.


역시 어느 날, B와 내가 둘이 만난 적이 있었는데 A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내 기분이 어때 보였었다더라, 하며 내 감정에 대한 평가질과 더불어 내 상태 진단까지 내렸다. B와 내 이야기를 아주 길게 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말 역시 짜증은 나지만 궁금하지도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칭찬이든 뭐든 내 이야기가 (특히 나 없는 곳에서) 회자되는 것 자체가 싫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예의 있는 거리를 지켜줬으면 하며 그럴만한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관심을 꺼 주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A는 그런 것 자체를 모른다. 그녀의 진실된 사고 회로는 이럴지도 모른다.

남이 칭찬 빼고 내 이야기하는 거 싫어, 그렇지만 난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돼! 걱정해주는 거자나! 나는 선한 사람! 애도 잘 키웠고! 나 짱!
이럴 땐 답 없다. A, B 둘 다 똑같은 사람. 그리고 특히 A는 이런 상황이 잘못인 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건 말해줘도 모를걸. 또다시 칠칠치 못한 나의 안목을 탓한다. 그리곤 애먼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탄하는 것이다.


나이와 지혜가(그래도 조금은) 비례할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편견이여!!
많은 의사들과 학자들이 그렇게 아니라고 하였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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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의식 속엔 저 몹쓸 편견이 남아 있었나 보다.


이 학생회도 참 조직이라면 조직이란 것이, 그 안에는 갈등도 참 많고 나름의 권력 다툼도 있다. 4학년이었던 B가 졸업을 하게 되면서 A는 자연스레 학회장이 되었고, 여러 임원 자리에 대해 인선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당연히 나에게도 어떤 자리를 제안했는데 일정이 유동적이라 수락하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이름만 올리는 것"이라고 날 설득하는데, 순진하고 무지한 내가 속을 뻔하다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아무 행사 안 가도 되지요? 그냥 이름만 주는 거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올 수 있는 행사는 다 와야지. 사회도 보고.

이것 봐. 결국 해야 할 일은 다 시킬 거면서 이게 무슨 이름만 올리는거람?? 게다가 사회는 무슨!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다 못해 염소 목소리 나오는 인간인데..

어떻게든 일단 사람 끌어들여 보자는 전략. 난 이런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사회 관계망의 다단계 같은 사람들.. 더 가관은 A의 인선 과정에 졸업한 B가 합세하여 사람들을 함께 만나고, 설득을 함께 하며 다녔단다.


학생회는 정말 뭐 주는 것 없이 말 그대로 '봉사의 정신'으로 '자원' 해야 하는 자리이다.

웃긴 건, 둘이 같이 만났던 사람들이 학생회 제안을 거절 하자 B가 어마 무시하게 화를 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건 무슨 소리?) 이건 뭐 도움을 구하는 게 아니라, 도와줘!! 도움을 내놔!! 아닌가. 혹은 이거 해! 나도 했으니까! 이거나. 암튼 거절하면 빼 애액-이었다.


다른 지역 대학에서는 그 임원을 자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A는 자기가 직접 잘랐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전 회장 B욕을 하길래, 그럼 나중에 제 욕도 하시겠네요 라고 말하면서 과감히 잘랐어"

헛웃음이 나는 내 입에서 진심이 흘러나왔다.

"아니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그리고 예전에 A님도, B님 욕 많이 하셨잖아요 어제도."


"아니, 그게 같나? 그건 경우가 다르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제발 설명 좀!)


또 어느 날은, 이제까지 임원 활동을 해왔는데 대학원을 가게 되어 이번 학생회를 못하게 된 사람이 있다며 분개하는 A의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자기를 도와 이번에도 연임하여 학생회 임원을 하기로 했는데 감히 대학원을 갔다는 것이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자기 하고 싶은 것 찾아간다는데, 대학원 붙은 건데 축하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고 A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학생회 자리가 비었어!!!!!!! 라며 분개했다.


물론 그녀의 마음을 안다. 나도 예전 동아리를 꾸려가며 느낀 감정이었다. 구성원들도 나 만큼 애정을 가지고 활동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녀 역시 어렵게 일구어 온, 자기 일과 양립하며 헌신하며 꾸려온 학생회에 대한 애정이 컸을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다른 구성원들도 자신만큼 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잊은 건 (아니 모르는 건지도), 대학원에 붙은 사람에게는 축하를 해 주고 이제까지의 활동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지, 생각지 못하게 (이유가 무려 대학원이거늘) 학생회 활동을 빠지게 됐다고 해서 가는 사람 마음 불편하게 책임감 운운하며, 뒤로는 욕하며 불편하게 보낼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오류에 너무나 깊게 빠져 있었다. 다 당신 같아야 하며 그게 아니면 감히 조직적으로 욕을 먹어도 된다! 는.


이 모든 상황 파악이 되기 전, 학생회 모임이 있었는데 그녀는 인맥을 총동원과 감언이설로 학년의 대표들을 겨우 모았다. 물론 나야 위의 상황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안 갔을 테지만 무튼, 행사 때 할 일을 정하는데 간단한 일이라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굳이 별거 아닌 일을 학년 대표들에게 분배하려 소모적인 회의를 이어나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사람들 시험한 거야. 테스트! 어느 정도 잘 따라 올 건지"

하...... 이건 뭐 어디서 어디부터 잘못됐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 "사람 테스트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던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인데. 자각이 없는 걸까? 이래서 콤플렉스는 치료되지 않으면 반복된다고 하나??


스토리는 이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학생회 장학금 준다며 받아간 학우의 주민번호로 신용자산 조회를 하고, 자기가 어색하다고 억지로 데려 간 자리에서 부탁해 억지로 끌고 간 사람은 정작 외톨이로 만들고 B 씨와 행사를 주도했다는 이야기 등등..

나만 빡친게 아니었다. 어느 술자리에서 쏟아져 나온 A에 대한 이야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쓰다 보니 좋을 것 없는 남 얘기가 너무 길어져 여기까지만 할까 한다. 사실 그 뒷맛이 아직도 씁쓸한 중이라, 착각의 황제 B 이야기는 담에 풀기로 한다.


우리는 또 이런 사람들을 보며 뭘 느껴야 하나? 너무 간단하다.

제발 공부하고 학습하자. 그게 어렵나? 역지사지의 마음이라도 가지자. 그것이 곧 공부다.


자,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보자.
'나라면 어떨까' or '상대방이라면 어떨까' 정도만 생각해도 나열한 일 중 반 정도는 해결될 것이다.
또한 사회의 대부분 문제가 위와 비슷하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


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지도 못한 데다가 말 재주도 없는 관계로, 당연히 그녀와의 뒤 끝이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내가 멀어진 형세이나, 아마 내 이야기는 두고두고 그녀의 입에,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므로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므로.

구성원의 상식 속에 '역지사지'가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길 바라고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지구에서 보면 한 마리 개미도 못 될 이 개인주의자는 그 어느 구석에서

제발 역지사지!

오늘도 이렇게 구슬프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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