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를 그 날의 내 머릿속에 새겨두고, 2년 뒤 나는 방콕에서 치앙마이행 야간 버스에 올랐다.
지금이야 검색을 하면 종종 경험자들의 글이 보이지만, 비파싸나 명상센터 "왓탐므아" 사원은 내가 처음 갔을 때만 하더라도 산속의 아담한 절에 가까웠다. 사원이 생긴 이후 한국인이 방문 한 건 내가 2번째라고 했다. 당시엔 교통수단도 따로 없어, 빠이-메홍쏜 구간 버스를 탄 후 기사에게 직접 부탁하여 사원 입구가 시작되는 길 한 복판에 내려걸어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루트였다. 길에서 사원까지 도보로 2~30분이 걸리는데 이후 다시 방문 했을는 시간마다 노란 썽떼우가 사원 입구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이고!
방콕에서 밤 차를 타고 치앙마이 터미널에 도착하니, 깜깜한 새벽에 군복을 입은 몇 사람과 승려복을 입은 스님들이 보였다. 내가 믿는 건 "비파싸나"라는 단어 하나와 태국인들의 인심. 누군가에게 정확한 목적지 정보를 묻긴 물어야 하는데, 스님들에게는 내가 직접 말을 거는 것이 어려우므로 주변을 살펴본다. (태국에서 스님들과의 대화는 가능하나, 초면인 상태에서 먼저 말을 적극적으로 걸거나 물건을 직접 주고받는 것, 대중교통에서 옆자리에 앉는 것은 아니 됨)
우선 표를 파는 창구로 간다. 아직 문도 안 열었다. 2시간 정도 기다리자 하나 둘 창구에 사람이 보인다.
"비파싸나 플리즈"
"???"
"비.파.싸.나. nonono... 위.퐈.쏴.놔"
"???"
아직 동도 트지 않은 까만 새벽. 무섭다. 새벽 내내 한 잠도 못 잔 피로에다가, 내가 가려는 목적지를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나도!!) 여기는 어디, 난 무얼 하는지 카오스 상태가 된다 오 노 안돼 안돼 안돼.. 이럴 때 셀프 진정을 위해 외우는 주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중에 시간이 지나 보면 이 시간도 추억이 되겠지 제발.
어두컴컴한 터미널에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 하나다. 태국에선 이런 경우 쏟아지는 시선을 가끔 받는데, 태국 친구에게 이유를 묻자, 나의 생김새가 태국인과 달라서라고 했다. 특히 피부색이 달라서라고. 그날도 마찬가지로 군인들이 단체 휴가라도 나온 건지 터미널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인이었고 자동적으로 시선은 나한테 쏠려 있었는데 태국인들의 순박함을 알면서도 그 시선과 분위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나쁜 놈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으므로.
시간이 좀 지나 해가 뜨고 사방이 밝아지자 마음이 약간 진정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비파싸나"의 정체를 여기저기 묻기 시작한다. 모를 땐 묻는 게 최선이고, 어느 오지랖퍼가 날 구원해줄지 모른다. 좋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드디어 영어가 되는 소년을 만나 내 상황을 설명하니, 나를 버스기사들이 모인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결론이 난 듯, 소년이 날 보고 말한다.
"아마 당신이 말하는 곳은 왓탐므아 같아요. 비파싸나 명상을 하는 곳입니다. 빠이에서 내리지 말고 버스를 타고 쭉 가세요. 내릴 때가 되면 알려 줄 겁니다"
방콕에서 잠 못 자고 치앙마이까지 왔고,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 가는 길은 커브가 500개 정도 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험한 길이다. 피곤한데도 이리저리 커브마다 쏠리는 몸에 잠을 청하지도 못한다. 버스가 빠이에 도착한다. 내가 좋아하는 곳, 익숙한 풍경이 보이니 반갑다.
빠이에서 느리게 두어 시간을 달리니 버스의 안내양 (남자니까 안내인?) 이 말한다.
"왓탐므아!"
"왓탐므아?"
"예스! 왓탐므아!"
오, 드디어 도착!
어젯밤 5시 버스로 방콕을 출발하여 다음 날 1시 반에 산속의 도로변에 도착. 하.. 약 스무 시간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내 짐을 내려주고 목적지까지 알려 준 안내인에게 코쿤카를 연발하며 손을 흔든다.
좁은 시골 산길, 건너편에 비파싸나 명상센터라는 간판이 보인다. 산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점점 깊은 산이 나오는데 길에 죽은 뱀이 있다 오마이갓..ㅜㅜ 오후의 뜨거운 태양과 4구가 아닌 2구 캐리어의 무게는 초행길을 더 멀게 느껴지게 만든다. 옆에 작은 트럭이 지나가는데 손 들고 태워달라 하고 싶은걸 겨우 참았다. 설상가상 더 걸어가다 보니 소가 길을 막고 있다. 근처에 사람은 없고 소가 나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소를 보니 너무 무섭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뒷걸음 질을 치는데, 저 멀리 원두막에 누워있던 소년이 내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곤 뛰어 와 죄 없는 소 엉덩이를 때리며 길을 내어 준다. 휴.......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하니 산속에 또 다른 작은 세상이 보인다.
이때는 정말 사무를 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스님 4~5분만 계셨는데, 스님이 주시는 등록대장 (처럼 보이는 그냥 큰~ 노트)에 내 이름을 적고 배정된 쿠티의 열쇠를 받는다. 쿠티는 작은 오두막으로, 수행자 별로 1인 1실, 사람 많으면 다인 1실을 배정해 준다.
2층의 최신식 쿠티, 미니멀리즘의 극대화 버전이랄까.
간단한 규칙을 설명해 주시는 스님의 영어는 짧지만 모든 대화는 다 통한다. 스님은 한국에 간 적이 있다며, 예전에 한국인 커플이 온 이후 내가 몇 년 만에 온 한국사람이라며 반가워해 주신다. 주지스님쯤으로 생각되는 여기 이 스님과, 뜻하지 않게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예정에도 없이 이 곳에 1달이 넘게 머물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흰 옷을 입는다, 비오는 왓 탐므아의 풍경
날이 좋은 왓 탐므아
흔한 명상센터 왓 탐므아의 풍경
이 풍경에 이들이 함께 있었다.
풍경을 찍는 소녀 한나
며칠 본 우리를 친구라며 의리 있게 챙기던 멋지고 순수한 벨지움 청년 쉴리반
남미의 흥이 살아있어 100m마다 아는 사람을 다섯 명은 만나서 인사하느라 바쁜 리얼 라티노 따띠아나
영어는 물론 태국어까지 유창한, 자기랑 잘 맞는 것 같아 태국 비구니 생활도 취미 삼아? 했었다는 히로에
내 이름을 유일하게 똑바로 발음하던 마크 (알고 보니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었음)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다는,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한 이후로 명상을 시작했다는 아이리쉬! 맥 아저씨
2번의 이혼에도, 아이가 있어 행복하다며 임신한 배를 쓰다듬으며 늘 웃던 비
스무 칸도 안 되는 계단을 세 번 연속 넘어질 뻔한 날 보고 뒤에서 스님이 하시던 말씀 '마이 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