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싸나 2

라고 쓰고 빠이에서 생긴 일

by 떠돌이

여행 중에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 그건 바로 벌레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벌레가 있지만 가장 무서운 건 간지러움을 유발하는 작은 진드기 같은 것들.

유럽 여행 때는 베드 버그에 (빈대, 진드기와 비슷함) 온몸이 물려 징그러운 흉터와 함께 사람들에게 혹시나 옮길까 눈치 아닌 눈치를 받았는데 체면 치례는 무슨. 가려움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였으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 몸을 벅벅 긁어다. 일렬로 나열된 흉터도 징그럽지만, 무엇보다 가려움이 정말 기절할 수준이었고 그걸 못 참아 긁어대면 피부는 엉망이 다. 그러다 결국엔 피가 나고 상처가 생기고 결국 흉터가 생겨 피부가 망가지는 사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일을 계기로 벌레 알레르기까지 있다는걸 알게 됐는데 보통 사람들은 물리면 가렵고 말지만, 나의 경우 가려움은 기본이고 열병이 나면서 앓아눕고 심하면 구토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여행 시 가장 효과가 가장 좋았던 브랜드의 해충 스프레이를 꼭 가지고 다닌다. 인도 여행에서도 빈대 한 방 안 물린 걸 보면 효과가 좋긴 한 . 여행이 끝날 때쯤 이 스프레이가 닳아가는 걸 보며 느낀 불안함이란..

빈대(를 비롯한 각종 해충)를 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숙소를 고를 때 습하거나 빛이 덜 들어 베드 버그가 서식하고 있을만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는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깨끗한 숙소라 하더라도, 이전 여행자가 베드 버그를 옮은 상태에서 쓰고 간 침대를 내가 쓰게 된다면 꼼짝없이 옮긴 한다. 이건 복불복.. 이후로는 피부가 예민 해진 건지, 모기만 물려도 살이 굉장히 크게 부풀고 알레르기 반응이 보인다. 어느 날 모기 물린 걸 본 친구가, 뱀 물렸냐고 할 정도로 흔적이 크고 가렵다. 이런 내게 고온 다습한 날씨의 태국 여행은 벌레와의 싸움이었다.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꼭 어느 한 곳은 물린 흔적이 흉터가 될 정도로 징그럽게 가려웠다.


싸나 명상 센터는 산 속이고, 풀 위에 쿠티가 있다. 풀 진드기를 조심하기 위해 닦여진 길로만 조심조심 다녔으며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얇은 매트를 털고 또 털어 낸 다음 내가 가지고 간 수건을 깔고 그 위에서 잤다. 어떤 것도 안심할 수 없으므로 조심 또 조심.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발 쪽이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정말 눈에도 보이지 않을 크기의 “쫑”이라 부르는 물 근처에 사는 벌레였는데, 마침 명상하는 장소 옆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작아 내 눈엔 전혀 안보이는데 물리는 순간 그 느낌을 알아챈 사람들이 탁 하고 때려잡으면 빨았던 피가 보였다. 이게 내 발등을 문 것이다. 자 이때부터 다시 시작. 나는 발을 미친 듯이 긁었고 역시나 열도 나기 시작했다. 내 증상을 간단히 적어, 밖에 나가시는 스님께 약을 부탁드렸지만 약을 먹어도 증상을 가라 앉히기엔 부족했다. 하루 날을 잡아 약국과 병원 방문을 핑계로, 몇 명이 절에서 잠시 나와 히치하이킹으로 제일 가까운 소도시인 메홍쏜 까지 가서 절에 있느라 못 먹었던 것들도 맘껏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작은 도시를 반나절 여행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시간이었다. 아, 속세의 맛, 보름만의 일탈!! 문제는 그때도 약을 여러 종류를 사서 돌아왔지만, 문제는 웬만큼 다양한 종류의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가 않는다는이었다. 신기하게 간지러움은 밤이 되면 더 심해져서 낯선 밤, 그렇지 않아도 잠들기 어려운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날이 많았다.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명상에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명상을 하는 곳에서 명상이 안되면 뭘 해야 하나. 하..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었다.


명상센터는 수행을 배우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늘 오고 가는데, 그날은 나를 제외한 유일한 아시안, 히로에와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히로에는 짧은 영어 때문에 대부분 혼자 있던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어울리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명상에도 경험이 많은 것은 물론 '비구니' 경력까지 있는 고수 중의 고수였으며, 성격도 둥글한 친구로 어딜 가든 사람들과 함께였다. 유창한 영어는 당연하고!

퀭한 내 모습을 본 히로에가 말했다.


"지금 너는 여기 말고 절 밖에서 기분 전환이 좀 필요해. 오늘 떠나는 3명이랑 같이 나가서 며칠 쉬다 돌아오는 게 어때. 진짜 다 좋은 사람들이야. 정말 Refresh 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큰 짐은 맡기고 작은 배낭만 꾸려, 명상센터를 떠나는 한나, 따띠아나, 쉴리반과 함께 작은 마빠이에서 함께 묵었다. 그들은 이제 여행을 마무리 해 가는 중이었다.







사실 나 역시 편견이 있는 사람임을 고백한다. 여행 때마다 날 짜증 나게 하거나 무례한 사람은 이상하게 전부 호주인이었는데, 한나는 호주인에 대한 나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 주는 사람이었다. 점잖았고, 사랑스러웠으며,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멋있는 사람. 게다가 스스로 쌓아 만든 자기 내면의 세계 역시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표현하자면..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떠한 일정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는, 늦잠 한번 자지 않는 모범 수련자.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난 저녁, 자신의 쿠티에서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데려가서는 몰래 담배를 피우는 말괄량이. (절대 담배 피우면 안 됨)

까만 밤, 그녀의 쿠티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가끔은 이야기를 하고, 또 가끔은 고요한 침묵 속에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은 내게 또 다른 명상의 시간이고 영원의 통로였다. 그녀는 늘 어떤 장소를 여행하고 떠나기 전 마지막, 카메라를 손에 들고 풍경을 찍곤 했다. (나는 카메라를 전혀 몰라, 라이카로 사진을 찍는 한나에게 왜 캐논이나 DSLR 모델을 안 쓰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라이카가 좋은 카메라인지 전혀 몰랐다 이불킥 제대로 하였음)

가끔 그녀가 SNS에 올리는 사진에 좋아요가 가볍게 몇 백을 넘기는 걸 보면 그녀의 사진이 정말 좋은 사진 일지도. 어쩌면 유명한 사진작가일지도 모르겠다.


빠이에서 우리 넷은 정말 저렴하다 못해 가끔 이불을 들추면 뱀이 나온다는, 대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Hut에 머물렀는데 아침이면 먼저 일어난 사람이 나머지 세사람의 방문을 두드려 깨웠다. 그리고 함께 아점을 먹고, 함께 차를 마셨으며, 함께 술을 마셨다. 또 어느 날은 오토바이를 타고 숲 속의 온천에 가서 신비롭다 못해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고, 밤에는 모닥불만 있고 당췌'Bar' 라고 부르는지 모를 숲 속의 정글 바에 갔다. 이들과의 동행은 너무나 즐겁고 유쾌하고 편안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나에게 이들의 몸에 베인 배려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며칠 오토바이를 얻어 탔었던 쉴리반에게 오토바이 렌트비에 보태라며, 약간의 돈을 건네자 쉴리반이 거절하며 말했다. "노노, 이런 건 벨지움 스타일 아님" "오 진짜? 사실 코리아 스타일도 아님, 대신 네 저녁 살게"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런데 정작 저녁은 따띠아나가 계산해버리는, 뭐 그런 식이었다. 매일 "투게더" 라며 화합을 중시하는, 이 사랑스러운 남미 아가씨가 우리가 저녁을 먹는 동안 그냥 계산을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맥주를 마실 땐 내가 몰래 선수를 치고. 차 값은 한나가 아무도 모르게 또 재빨리 계산. 함께 빙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각자 돈을 나눠 내는 문화권에서 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서 겪게 된 특별한 경험이자 감정이었다. 말 그대로 "투게더", 늘 함께 였다. 기분 전환을 넘어, 진정한 행복감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여기는 무려 온천, 따뜻한 물이 흐르고 곳곳에 녹아내린 색색의 초 들이 너무나 로맨틱하다

늘 "투게더"를 외치는 남미 아가씨 따띠아나는 말 그대로 긍정왕이었는데 짜증 날 법한 상황에도 절대 짜증을 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농담을 던지는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상상이 쉬울까? 그녀는 작은 것 하나에도 엄청난 리액션을 보이며 정말로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다 누군가와 엄청나게 반갑게 인사를 하길래 아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전에 한번 가 봤던 펍 사장이라고 한다. 리액션이 분명 최소 십 년은 넘은 친구였는데!!

나는 웃음을 잃지 않는, 특히 힘든 상황에서도 늘 긍정을 보이는 그녀의 결 고운 성품이 참 부러웠다.

지금은 좋은 남편을 만나 호주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어디서든 그녀만의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히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외려 그녀가 더 빛나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벨지움 청년 쉴리반은 CSI 에 나오는 배우와 정말 똑같이 생겼는데, 정작 자신이 잘생긴 걸 모르는 아주 순박한 아이였다. 우리 중 가장 어렸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우리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듬직하고 귀여웠다. 숙소 테라스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동네 아이들이 수영하는 빠이 강을 보더니 옷을 훌렁훌렁 벗어 우리 쪽으로 휙 던지고 서는 팬티만 입고 강가로 뛰어드는 말 그대로 순수하고 귀여운 장난꾸러기. 그런 그의 전직이 마약 딜러였다니 놀랄 노자다. 지금은 이쁜 아이와 사랑스러운 여성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종종 페이스북에 올리곤 한다. 빠이에서 계속 문신을 늘리더니 등에 세계 지도가 있는 사진을 보았다.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길!


우기 시기의 빠이 강, 저기로 풍덩! 들어간 쉴리반


여기는 무려 빠이의 은행. 예술가들이 모인 마을의 은행 클라스


며칠을 신나게 놀고 이제 헤어질 시간. 셋은 같은 날 떠나는 표를 끊었고, 나는 다시 절로 돌아간다.

한 명 한 명을 배웅한다. 실은 너무 아쉬워 셋의 기념품을 샀다.

마지막 식당에서, 쉴리반이 주섬주섬 뭘 꺼낸다. 우리를 위해 사온 팔찌! 사실 너무 조악한데, 그 마음이 너무나 귀엽고 예뻐 행복했다. 기꺼이 우리 셋은 팔에 차 보여준다.

나도 몰래 준비한 '빠이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틴 케이스를 꺼낸다. 웃음이 번진다.

읭? 그러더니 갑자기 따띠아나도 동전 지갑을 꺼내 하나씩 준다.


나에게만 이 만남이 특별한 건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나만 아쉬운 건 아니었나 보다.


서로 몰래몰래 선물을 준비한 거다. 마지막까지 훈훈했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유럽에서 온 4명은 정말 신나게, 재미나게 원 없이 놀았다. 아프리카만 있으면 완성된다고 장난처럼 말했는데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겠지.


우리는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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