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와 궁상이의 과거 고백
생각해보면 따돌림을 받았나 싶은 시기도 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몰랐고, 주제에 눈치는 되게 봤다. 세상 찌질하지 않나.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의 모습에서 풍겨오는 공포감과 두려움, 차별 하는 부모 아래서 차별당하는 입장으로 자란 아이가 지속적으로 받는 서러움은 스스로의 존재를 하찮게 느끼게 만드는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불안함과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커온 아이가 사랑스러운 아이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본 것이 있어야 배울것 아닌가.
남들 모르게 구김살과 열등감을 꽁꽁 숨긴 채 살았건만 감출 수 없다는 사랑과 기침처럼 결코 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몸에 밴 불안과 열등감은 숨길 수록 밖으로 더 드러났을 것이다. 눈치 보며 커 온 세월이 있다 보니, 얻은 건 그런 사람을 식별 해 내는 능력과 눈치다.
그래, 지금에야 솔직히 고백한다. 과거의 나는 지지리 인기 없었음을.
그러면서 여기저기 챙겨주는 척은 되게 하는 호구였으며, 그것이 실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진짜 내면'의 반대급부로 표출된 행동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도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나를 좋아했으면 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애를 써도 너무 어려웠다.
나도 친구들 중에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또래 아이들의 신호를 잘 읽지 못하는 나는 왕따 당하지 않는것만도 감지덕지였다.
나도 아빠랑 친하고, 엄마에게 애정을 듬뿍 받는 귀한 딸이자 막내이고 싶었지만, 나를 사랑해주기에 당신들의 인생은 너무 바빴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내가 초등학교 때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많았다. 모범생이자 나의 이상형이었던 한 남자아이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공을 정면으로 맞고 코피가 났다. 그 아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으므로 일대에 소란이 났고, 그 소란은 저 멀리 교실 창가에 서 있던 나에게도 보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휴지를 들고 운동장으로 냅다 뛰었다. 그러면 그 애가 좋아해 주겠지 하는 마음을 안고.
결과는 참담했다. 그 애는 로즈데이 때 내가 건네는 장미꽃 한 송이가 받기 싫어,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뒷걸음질로 자리를 피했다. 무려 거절도 아닌 도망이라니. 내가 주는 장미꽃 한 송이가 그렇게 부끄러웠나,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다. 23년 전의 일인데 그때의 풍경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충격적이긴 했나 보다.
그리고 겸손한 척 솔직한 척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전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잘 알게 된, 가진 자에게서 나오는 여유라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심리학 박사님께 본 타로에서 마법사 카드 나옴!)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에게든 동성에게든 너무 잘해주려 굳이 곁에서 동동 거리며 애를 쓰는 것보다 내 할 일 하며 적정한 간격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세련된 '사교'의 기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살아보니, 그것이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영혼을 담는 '그릇' 일 뿐인 외형이지만, 그릇이 준수하거나 잘 가꾸어졌을수록 스스로에 대한 긍정이 쉬워지는 것은 물론,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 우리 인정하자. 준수한 외모에 대해 대게 첫인상의 평가가 후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조상님들의 오래된 교훈도 있고. 내게 연인을 고르는 기준은 생각의 유사함이지만 유사한 두 명이 있다면 잘생긴 쪽이 당연히 좋다 나도.
뼈아픈 과거와 잊고 싶은 흑역사이지만 그래도 이런 배움을 얻었으니 세상 공짜 없다는 말이 맞긴 한가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김비서가 왜이럴까 드라마를 보다 보니,
사랑스러움으로 가득찬 나와 함께 행복한 주말을 보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