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3단 연속 콤보
기분 좋게 시험 하나를 끝내고 이베리코 도요타 고기를 맛나게 먹는데 몇 년을 만나 온 가족 같은 남친이 말한다.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이유도 모르고, 술이 돼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후 술에서 깨어 물어본다.
"진짜 헤어지잔 거야?"
"어, 여기 있는 물건은 시험 다 끝나고 천천히 가져가도 돼"
몇 마디 말들을 더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한다. 잠이 오지 않아 먹은 새벽 3시의 진정제는 오전 내내 나를 졸게 만든다. 정신이 아득하다
토요일은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우리 자매는 웬만해선 주말에 전화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언니가 전화하면 겁부터 난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면서. 역시나 받아보니 우는 목소리다.
기르는 강아지의 중병을 알게 된 언니는 울면서 병의 경과와 앞으로의 가망 없음을 줄줄줄 읊어댄다. 손 쓸 수 없게 된 강아지의 상태. 나는 이놈의 순둥이를 잘 안다. 사람이 때리거나 미용을 잘못해 상처를 입혀도 아무 내색을 안 하고 참는 바보같이 순한 녀석. 마음이 미칠 듯이 쓰라려 온다. 젠장. 당장 내일도 시험인데 공부하기 글렀다. 새벽 내내 계속 강아지 병세에 대해 찾아보다가, 페북에 물어볼만한 선배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니 메시지가 안 보내진다. 결국 내 타임라인에 올리니 한 선배가 친절히 병원 정보를 주었다. 그동안 언니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가 또 아니, 그냥 가망 없으니 있는 동안 만이라도 잘 해주겠다고 했다가 또 병원을 가자고 했다가. 나는 근처의 병원이라도 가보자고 했다가. 답답함과 짜증에 돌아버릴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언니 집으로 향한다. 노견의 얼굴이 안쓰럽다. 정든 강아지에 대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나도 안쓰럽다.
이번 달엔 회사 일 때문에 아는 선배에게 작은 일 하나를 부탁했는데, 토요일도 그렇고 계속 페이스북 메시지가 가지 않는다. 다른 후배를 통해 연락 해 보니 선배가 날 차단했고, 그 후배에게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니 도대체 왜? 화가 났으면 이유라도 말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왜? 라는 물음만 계속 떠오른다.
타인에게 준비 없이 내쳐짐은 혹독하다. 속이 타고, 손발이 떨린다.
전화도 안 받는다. 어쩔 줄을 모르겠는 시간이 간다. 맡기기로 한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다 보니 전화가 온다. "일은 하기로 했으니까 하겠다"라고 말한다. 그때 물어볼걸 그랬나 왜 화났냐고. 그러나 선배의 목소리는 이미 내 말을 차단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선배에게 나는 그냥 힘없이 대꾸한다.
- 선배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돼요.
' 그럼 안 할게.
- 선배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 아니
뚝, 전화가 끊긴다.
무슨 일이냐 묻는 문자에 답은 없다. 전화던 문자던 뭐던 그냥 다 차단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가 내린 일방적인 벼락을 맞은 것 같긴 한데, 내쪽에선 이유를 물어볼 기회조차 없다.
짐작 가는 일은 있다.
내가 매거진에 쓴 구 남친에 대해, (https://brunch.co.kr/@anindivisualist/19) 얼마 전 페북에 저격이자 사과를 요구하는 글을 써 놓았고 선배는 그 남자애와 나를 동시에 아는 사람이다.
왜 이제 썼냐고? 내가 매거진에 쓴 이유와 같다. 이제는 과거의 일들이 내 잘못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이 보았으면 해서. 이제 사과했으면 해서.
그런데 대체 그 글의 어떤 부분이 선배를 자극했단 말인가?
도대체 모르겠다.
유명하신 분이라 페북 글 하나에도 리플과 좋아요가 수없이 달리는 작가이자 하고 싶은 말은 또박또박 다 쓰시는 선배인데 대체 내게 왜 화가 난 건지 난 모르겠다. 그냥 나라는 인간을 자신에게서 싹둑, 잘랐다는것만 안다.
이유도 모르고 쳐내진 사람은 그냥 어벙벙하다. 이유조차 듣지 못하는건 억울하다. 두렵다.
내겐 막혀 검색조차 되지 않는 그녀의 SNS 계정 안엔 나에 대한 비난이 쓰여있을 것만 같다. 그녀의 영향력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