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잼
내 취미가 뭘까?
딱히 취미라고 할 만큼 꾸준히 즐겁게 하는 것이 없고, 또 특별나게 좋아하는 것은 먹는 건데 대식과 미식은 거의 생활 습관이라 뭘 취미라고 해야 하나..라고 오랜 시간 생각 해오던 차에 어떤 의사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길게 할 기회가 있었다. 상담에서 시작해 수다가 된 상황이었는데, 타인에게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무언가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그때 발견했다. 내 취미는 술 마시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 하셨다.
나의 전반적인 생활 습관을 들으시곤 내 나이 또래의 성별이 가진 취미와 생활 패턴과는 조금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인정한다. 나는 호타루의 빛에 나오는 건어물녀에서 내 모습을 본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퇴근하고 티브이 보며 맥주 마시는 것이 더 편안하고, 주말엔 집에 누워 있는 것이 좋다. 나가면 나가는 대로 좋지만 일단 만 24시간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등을 붙이고 있어줘야 한다. 술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므로 혼술도 자주 한다. 저탄고지 때문에 맥주는 잘 못 마시지만 와인, 대장부 소주를 비롯한 증류주, 저탄수 맥주 등 주종별로 다양하게 사랑하는 것은 물론 어떤 계기든 그냥 술 생각이 나면 주말엔 낮술도 마다하지 않는 애주가이다. 요즘은 술을 너무 마시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살짝 되긴 하지만 과음으로 인한 걱정은 다른 이야기에 쓰기로 하고..(에피소드 완전 많다)
내 취미가 술 마시며 책 읽고 영화보기라는 걸 발견 한 뒤로 많은 장면이 우스스 스쳐갔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놓여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정리되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도. 나는 술을 마시면 감정의 폭이 훨씬 넓고 깊어지는데 그래서 이런 취미를 즐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취미생활의 장점을 밝히자면 아래와 같다.
1. 술을 마시며 책을 읽으면 몰입도가 엄청나다. 특히 소설을 읽으면 웃긴 장면에선 혼자 소리까지 내며 웃고, 슬픈 장면에선 눈물 콧물 다 짠다. 감정이입은 물론 단어 하나하나가 머리에 쏙쏙 박히는 느낌으로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장난 아니다.
2. 술을 마시며 영화를 봐도 마찬가지로 몰입도가 엄청나다. 내가 바로 주인공!! 단점은 술기운에 영화 감상 중 잠들 수 있다. 가끔은 다음 날 내용 전혀 생각 안남.
3. 뭔가 창작욕구가 막 솟구친다. 이상하게 술이 조금 취하면 생각의 업그레이드나 명료화 과정이 발생하고, 그걸 놓치기 싫어 필기구를 찾아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겨우겨우 옮겨 써 놓지만 다음날 보면 이게 뭔 소린가 할 때가 대다수이다. 일단 글씨체 괴발개발인데 그렇게 뭔가가 쓰인 종이들이 머리맡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버리기도 아깝고 제대로 읽어보자니 정리도 안 되는 기억의 파편 쪼가리 들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런 기억의 파편들 중 하나를 발견했는데 제법 글씨도 알아볼만하고 내용도 지금 나의 생각을 제법 투영 한 글이었다. 술 먹은 거 치고 굉장히 정리가 잘 됐구나 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이 돈 (월급)의 대가로, 너무나 만연해서 이 시대에서 그저 평범한 일로 치부되는 '불평등'을 견딜 것인가.
(불평등을 견디는) 그것의 대가는 고작 나의 월급,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치환된다.
- 이솔 화장품을 쓰는 것
- 먹고 싶은 것과 LCHF 식단을 위한 식자재를 가끔 사는 것
- 티셔츠 혹은 재킷 하나
- 집 전세금의 원금과 이자 상환
- 관리비와 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
아무리 규모를 줄이려 해 보아도, 얼굴에 니베아 하나만 바르고 비누 하나만 쓰는 극단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행동반경이 있는 이상 교통비 혹은 차량 유지비도 추가 발생하므로 권여선 작가의 '이모' 같은 삶은 불가능하다. (내가 이 소설을 정말 엄청나게 재밌고 감명 깊게 읽어서 인지 술만 먹으면 튀어나오는 단골 소재이다. 이날도 그랬던 듯)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삶이지만, 그만큼의 강도로 원하는 또 다른 삶의 갈래들이 있다.
시인 이상처럼, 나는 애써 눈감고 모른 척한다.
알고 있고, 알고 싶었기에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고 싶다.
욕망이 있는가? 아직은 너무나 자본의 노예가 아닌가.
맨 정신에 읽으니 웃기긴 한데 또 내용을 보니 이 글을 썼던 과거의 나 자신이 짠하기도 한 건 이걸 썼던 얼마 전이 인생에서 좀 심하게 고달픈 순간 중 한 때였다.
술 먹고 솔직하게 쓴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보자.
강신주 박사의 말에 따르면 A, B 가 고민될 때는 아무것이나 선택 하라고 했다. 고민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므로. (공감) 이미 한 방향을 택해 저~ 멀리 가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방안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에 돌아갈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떤 고민이 생기든 일단 우리는 성인이 되긴 글렀으니 대충 아무거나 선택해서 살면 된다. 선택의 고민이 된다는 것 부터 어느쪽도 명확하게 가야할 길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다만 어떤 결정을 하던 성급하게는 하지 말 것.
그래,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눈감지 말자.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면 그것이 하나의 신호임을 인식하고, 불편함을 애써 모른 체 하지 말고, 더 파고 들어가서 실체를 직면하도록 하자. 직면할 힘을 기르자. 인생의 바탕은 본래 고통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셀프 세뇌하여 자기연민 같은 오버는 하지 말자.
내일의 기쁨에 대한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쪽을 택하자.
변하는 만물에 대한 무상함을 매 순간 인식하며, 아쉬워하고 애틋해하며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