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페미니스트 그리고 강신주
나는 휴머니스트이므로 페미니스트이다.
이 문장에 어떤 이들은 내게 "나쁜 페미니스트" 시네요 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꼴펨, 남혐 종자" 등의 단어로 받아 칠 지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 (도서 "나쁜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기준으로)에 가깝지 않을까. 그저 페미니스트라는 말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발언을 한 강신주 박사님의 팬이라고 한다면 아마 전, 후자에게 다 욕먹을지 모르겠다. 사회 운동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 같은 뜻뜨미지근한 개인주의자는 열렬한 운동권 눈에는 회색분자로 보일 테고, 수구세력의 추종자들에겐 급진 빨갱이로 보이는 그런 논리 말이다.
내가 아는 분 중 심리 상담을 업으로 하시는 분이 있는데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이야기가 아주 잘 통하는, 그래서 어떤 소재라도 정말 검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 처음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로 만났지만 상담 횟수가 늘어 갈수록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단계를 거쳐 개인적인 연락까지. 그녀로서는 직업윤리를 위반 한 셈인데 자기의 상담 인생에서 나를 포함 이러한 경우가 딱 2번 있다고 했다. 그녀의 상담 경력으로 보아 어쩌면 난 행운아였던 셈이다. 그녀는 금기를 깨고 내게 동무가 되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강신주 박사의 저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물으니 (물론 내 의견을 피력하기 전이었다) 페미니스트인 그분 역시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맹목적인 부분이 있다고, 당연히 문제가 있음을 안다고. 그렇다고 페미니즘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라는 것도. 꼭 내 마음속의 말을 읽으신 것 같아 귀가 빨개졌다. 그리고 마음결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며칠 전, 여성운동 집회에서 나온 거친 단어들에 대해 강연재 의원과 신지예 전 서울시장 후보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정치적 성향으로 정 반대인 두 사람의 의견임에도 굉장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 이런 이슈로 인하여 결국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이 가려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
- 나쁜 단어 사용에 대하여 유난히 여성에게만 더 민감한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며 이슈가 되는 현실,
- 이 모든 것이 여성 혐오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 기타 등등, 모두 주옥같은 말이었다.
정치적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인권에 대해 동등한 입장을 보이는 것, 나는 이런 것이 진정 건강한 활동의 동력이라 믿는다. 프랑스 정치인들을 보면 그렇지 않나, 아무리 당파 싸움을 강렬하게 하더라도 외교의 자리에서, 국익 앞에서는 똘똘 뭉친다. 우리나라는 당파 싸움하느라 국내 현안은 물론 중요한 외교 현안을 놓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꽤나(라고 쓰고 엄청) 많았다. 나는 건강한 활동의 동력, 사회를 무사하게 돌아가게 하는 이 모든 것은 상식을 지키는 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평생 교육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신뢰는 곧 사회의 자본"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분의 말인지, 인용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맞는 말이지 않나?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인 이 문장에 너무 감명받은 나머지 필기까지 한 걸 보면 공감이 어지간히 됐던 모양이다.
자 그럼,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당연히 최소한의 합의된 공통 의견이 있어야 한다. 그 공통의견이라는 것조차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보급된 후 인식되어야 하므로 그것은 곧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보드 게임을 하더라도 룰을 모르면 게임을 할 수 없듯, 규칙도 알아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사회의 '게임 룰'을 가르치는 것이 사회의 기초 공교육과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평생 학습이 지방자치를 원동력으로 빠른 속도로 자리 잡는다고 믿는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말할 것도 없이 개인적 학습이다. (사실 평생 교육론에서는 개인 학습도 평생 학습의 일부로 본다.) 제도권에서 한 발짝 떨어진 학습이거나, 이질적이어서 다양하면 더 좋고. 학습으로 인해 비롯되는 성찰, 성찰로 인해 다시 하게 되는 학습, 더 넓어짐으로써 더 큰 성찰과 함께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학습 말이다. 평생을 주기로 서로 반복되는 두 가지 행위, 성찰과 학습은 한 사람의 개인을 좋은 주민으로, 구민으로, 시민으로, 국민으로 만든다.
왠지 쓰고 보니 너무 전체주의자의 스멜이 나서 덧붙이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개인적 학습은 제도권에서 한 발짝 떨어지거나 이질적이면 더욱더 좋다고 생각한다. 조승연 작가도 말하지 않았나, 공감은 사실 내가 아는 부분의 영역이고, 이질적인 것은 그만큼 다르므로 오히려 배울 것이 많다고. 사실 제도권 교육이라는 것이 일정 수준의 교육을 보장 할지언정,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만드는 '자본과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담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으,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한 국정교과서 사태도 겪지 않았던가. 이렇게나 무서운 것들은 우리 곁에 엄청나게 많기에 또 어떤 나쁜것들은 흔적도 없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검열하여 취사선택해야 한다. 그 취사선택의 눈을 길러주는 것이 학습이자 성찰일 것이다.
이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수요일, 울산 남구청의 강신주 강연을 다녀왔는데 알고 보니 이 역시 평생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된 행사였다. 강연이야 뭐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늘 비슷한 이야기로 이루어 지므로 책이나 티비를 봐도 무방하지만, 강신주라는 사람의 강연에서 풍기는 자유로움을 보고, 감상하며, 에너지를 얻기 위해 갔다. 역시나 등산복에, 배낭까지 메고 오셨더라. 의식의 흐름 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