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Queen of the desert, 거트루드 벨
김영하 작가는 현실의 어려움을 책으로 도피한다고 한다.
나 역시 현실의 어려움을 도피하기 위해 나만의 도피처를 가급적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급적 나와 어려움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주는 것이길 소망한다.
직장인에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의 먼 거리와 긴 시간의 여행은 쉽게 허락되지 않기에, 나 역시 주로 책이나 영화로 도망친다.
오랜 시간 만나온 그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하고 직면할 용기가.
나 자신이 얼마나 허약하고 나약하며, 외로움을 못 견디는 인간인지 직면할 용기가.
헤어졌지만 어쩌다 다시 만난 어정쩡한 관계에서 나는 정서적으로, 생활적으로 그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고 그 역시 나에게 무언가 신뢰가 요구되는 부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요구하고 행동하는 것은 늘, 나였다. 정작 다급한 일이 있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한참 당구를 치는 중이었고, 모든 사건이 종료된 후 화가 난 나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늘 먼저 연락하는 쪽은 나였다.
화가 났던 그 날 이후 오히려 감정이 차분해졌다.
연락을 하지 않고 기다려 보았지만 그가 먼저 나에게 연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기다림이라고 하기에 짧은 것일까? 아님 그가 몹시 바쁜 것일까? 아니, 사람에게 그 정도 바쁜 일이란 웬만해선 없고,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의 말이 아닌 행동을 믿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입에서 따뜻한 말이 나올 가능성도 없다.
그렇게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보니, 이 관계는 미련스러운 내가 겨우겨우 붙잡고 이어 왔음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 감정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친구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음을 인정할 때가 왔다.
심리적 고아가 되어 황망하고 외롭고 두렵기에, 못난 나는 또 도망칠 준비를 한다.
내가 그토록 원하지만 두려워하는 행위, 진짜 나 자신에게 다가가 그 모습을 봐야 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갖게 하도록 신은 늘 시련을 준다.
오랜 시간 연인을 넘어 친구보다 편하게 지내왔던 그의 싸늘한 마음을 정통으로 직면해야 했다.
충분히 괴로운 이 상황이 신의 눈에 차지 않았던 걸까? 마음을 정리하는 동안,
내 정치적 가치를 심어준 정신의 아버지 같은, 노회찬 의원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홀로 세상을 떠났다.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나를 내친 선배였다. 자신의 유명세와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거침없이 SNS에 자신의 입장을 풀어놓으면 좋아요 수십 개는 몇 분 안에 받는, 그래서 외로운 시절 같은 건 깡그리 잊어버린 듯 보이는 바로 그 선배의 하하호호 웃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외친다고 들릴리가. 불러도 늘 대답 없는 신은 뒤로하고 미물인 내가 절실하게 도망 칠 곳이 필요했다.
실컷 울고 싶어 적당한 영화를 고르고, 도서관에서 DVD를 신청하는데 한참을 헤매던 사서가 난처한 얼굴로 그 자료는 지금 다른 사서의 교육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우연히 영상자료 목록을 넘기다 정말 우연히 선택한 영화는 내가 부러 찾을래도 찾을 수 없는, 가끔 가다 운이 좋으면 만나지는 '내게 영감을 주는' 영화였다. 원래 고르려던 작품을 가져간 사서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코엘료의 표현을 빌려 신비주의자들이라면 '표지'로, 회의주의자들이라면 '우연의 일치'로, 심리학자라면 '관심 집중'이라고 부를 현상이었다. 연속 펀치를 뻥뻥뻥 세 방 연속으로 맞고 쓰러지기 직전인 나에게, '로맨스'인 줄 알고 집어 든 이 영화는 잊고 있던 내 마음속의 영웅들을 소환해 주었고, 그들의 용기와 강인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 기억으로 인해 내 안에 있던 작은 용기들은 고개를 들고 힘을 얻어, 당분간은 견딜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나를 위로해 주고 북돋아 주었다. 바로 그 영화의 이름은 '퀸 오브 데저트' 장르 분류는 로맨스이지만 결코 로맨스로만 볼 수는 없다. (생각해 보니 사랑 이야기 중 내 마음에 남은 대사가 있다. 이건 2편에서 소개하기로.)
영화는 실존 인물 '거트루드 벨'의 생애 중 짧은 시기, 그러나 그녀가 그녀 자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이자 그녀 인생중 전환점이 된 시기의 초입을 보여주는 영화로, 배경의 영상미는 물론 그 음악에 넋을 빼고 앉아 있을 만큼 메시지, 영상, 음악의 삼위일체가 훌륭하다. 하나의 직업이나 어떤 존재로 단정 짓기 어려운 그녀는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였으며 스파이면서 정치가, 외교관이기도 했고 협상가이자 훌륭한 작가의 삶도 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직면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사막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 매일 걷거나 낙타를 타고 야영지를 치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그녀는 말한다.
생애 처음으로 내 심장의 주인을 알게 됐다.
사막에서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어떤 위협이나 제도적 방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깊이, 더 깊이 사막으로 전진한다. 단순함과 자연의 거대함만이 반복되는 장소로 걸음을 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탐험을 끝내고 영국군의 점령 도시로 돌아오면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자신을 반복적으로 사막으로 밀어 넣는다. 또한 그녀는 모든 식민 개척 국가들이 그토록 상대하기 어려워 한 베두인족에게 '자신들을 이해해준 단 한 명의 외국인'으로 신뢰를 받으며 아직도 그들의 역사 속에 구전될 뿐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으로 많은 아랍 부족에게도 사랑받았다.
커버 사진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인상 깊은 대화가 이어진다.
거트루드 벨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은 왕이 되실 거예요........ 허락하신다면 떠나도 될까요?
조용히 일어서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어지는 두 남자의 대화.
남자 1 : 우리가 왕이 될지 어떻게 알지?
남자 2 : 그녀가 킹 메이커니까.
실제 그녀는 이라크와 요르단 건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남자 1,2는 실제 이라크와 요르단을 건국하고 각 나라의 왕이 되었다.
시련과 고난을 통과할 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의 생애는 늘 큰 울림을 준다. 거트루드 마가릿 로우시안 벨, 그녀의 삶처럼.
스피커의 볼륨을 귀가 아플 정도로 높이고 영화의 스크립트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마음에 똬리를 트는 듯한 몽환적인 아랍 음악이 내 귓속으로 흐르고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녀가 있었을 사막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내밀한 마음속 언어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외로움에 대해 상상해본다.
그녀는 사막의 고독이 자신의 고독을 위로해준다고 했다. 고독했던 그녀의 삶을 엿보며 인생의 바탕은 외로움이며 고독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 사실은 내게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외로움은 그저 외로움으로서 소멸되고 고독은 그저 인생의 한 부분으로서 수렴된다.
Ps. 시장을 걷던 그녀에게 한 상인이 고개 숙여 그녀에게 입 맞추며 말한다. 아주 큰 부자가 되실 거예요, 무언가 크고 좋은 것이 가득한, 큰 자리에 오르실 운명입니다. 상인에게 웃으며 그녀는 말한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요"
100년 전, 그녀의 말이었다.
- 사진출처 : 영화 퀸오브데저트 스틸컷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99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