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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Dec 15. 2018

백수의 삶

난에서 생긴 일- 여행이야기2

Nan의 Long boat Racing 대회


내가 난에 도착한 첫날 본 야시장은 난의 큰 행사 때문에 임시로 열린 야시장이었다. 땅도 넓은 만큼 다양한 민족이 터를 잡고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중 긴 모양의 배를 타고 이 땅에 들어온, 란나왕조가 있었다.

난의 왼편을 따라 길게 흐르는 강을 타고 와 이 땅에 정착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원 내 화려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난은 사원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사원은 물론 벽화까지 내가 본 그 어느 도시보다 화려하다.


길을 가다 우연히 보이는 사원도 이토록 화려하다


낮 시장은 물론 야시장이 열릴 정도로 크게 치러지는 롱보트 대회는, 이 땅에 정착한 조상의 역사를 기리는 후손들의 기념이자 조용한 소도시에서는 가장 큰 연례행사이다. 내가 간 시기가 바로 보트 레이싱 대회를 여는 기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야시장과 비슷한 느낌의 태국 야시장
없는게 없는 야시장에서는 토끼와 토끼옷도 판다



아침을 먹고 숙소 근처 강가에 나가보면 열심히 연습 중인 태국 청년들이 보였다. 보트는 꽤 길어 보여서 길이가 어느 정도 일까 싶었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꽤 길고, 여러 명이 함께 노를 젓는데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는 속도는 꽤 빠르다. 뜨거움을 넘어 따가운 햇살 아래 노를 열심히 젓는 팔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회 전 열심히 연습중인 보트 청년들


본격적인 레이싱이 열리는 날 강가에 나가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바람에 자리를 잡는다.


시장이 길게 늘어선 바깥쪽에 자전거를 대고, 보이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마시는 코코넛수를 일단 한잔 사서 시야 확보를 위해 높은 연단 같은 곳으로 올라가 본다.

코코넛 중독자가 되어 보이는대로 사서 마셨다


연단 같은 곳에는 상패와 트로피들이 전시돼있고, 방송 중계를 하는 카메라가 현장을 열심히 찍고 있다. 한참 구경 중인 현지인들을 따라 빈자리를 잡고 앉는다. 역시나 친절한 사람들은 편히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고, 옆자리 아주머니는 단어의 조합으로 어떻게든 이 경기를 설명해주려는 열정이 넘친다.


그늘로 올라가니 인심좋게 자리를 내주어 편하게 감상했다. 앞의 카메라는 결승선쪽의 카메라
간격 차이가 많이 나 보여도 아슬아슬하게 팀의 승패가 결정난다


스타트라인은 보이지 않고, 내가 앉은 곳은 피니쉬 라인이 보이는 곳이었다. 이쯤 온 보트들은 말 그대로 엄청난 스피드로 눈앞을 지난다. 여러 명이 일사불란하게 패들을 젓는 모습을 보자니 소름이 우수수 돋는다.

배의 길이가 워낙 길어 근소한 차이일 땐 승패를 분간하기 어려운데, 왼쪽 다리를 보면 이긴 팀의 깃발을 올린다. 옆의 아주머니가 이걸 설명해주셨는데 의사소통이 안되니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나중엔 이해하고 보트가 결승선을 지나자마자 다리 위쪽을 올려다보니 나의 이해 완료를 파악한 아주머니가 너무나 기뻐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우셨다.

이긴팀 위로 주황 깃발이 올라간다


사실 이 보트 경기는 고산족부터 시작해, 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이다. 당연히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고, 관광객은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내가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된 듯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관광객을 그저 호기심으로만 바라보는 순수한 이들의 눈빛이라 불편하지 않다.


결승선에 자리 잡고 앉아서 출발선의 상황이 궁금했던 찰나, 한 아저씨가 방송되고 있는 출발선의 중계를 자신의 폰으로 친절히 보여주시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따듯하다. 아무일 없을 것 같던 하루도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사소한 친절을 받는 일로 채워져간다.


경기의 흥분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고, 그저 그럴 것 같았던 지루한 하루도 근사하게 채워진다.


멀리서 온 여행자 한 명. 내가 뭐라고, 대체 내가 뭐라고. 지루해서 떠나려 했던 여행자 한 명이 뭐라고. 여기 사람들은 또 이토록 친절하게 여행자를 붙잡는다.

아니, 실은 작은 호의에라도 마음을 기대고 싶은 한 여행자가 그들에게 마음을 맡기고 싶은 것일거다. 어디 두지도 기대지도 못해 공허하게 떠다니는 그 마음 한뭉텅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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