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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Feb 09. 2019

홍콩에서 혼자 비포선라이즈

왜 이러세요 아주머니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홍콩 숙소의 특징과 인간군상의 공통점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지 몰라도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는 건 만국 공통인 듯. 조심해야겠다.


여행의 중반쯤 꽤 말이 잘 통하는 한 여행자를 만났다. 게스트하우스의 술자리에서 그와 나만 외떨어진 섬이었고, 내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 정도로 호감이 갔고, 또 같은 취미를 가졌음을 알게 됐다. 취미의 원활한 정보교환을 위하여 카톡까지 주고받았다.


내가 이곳 칭다오는 너무 맛있다고 한 말에 자리가 파하고 나서도 새벽까지 길맥을 했다. 다시 볼 일이 없을 여행자라는 처지, 술도 한잔 마셨겠다, 속의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났다. 내 마음을 그대로 복사한 듯 이해를 잘하는 사람 앞에서 내 모든 이야기는 동의되었고 이해받았다. 나보다 어린 그는 내 나이를 자신보다 어리게 생각했다. 이것도 기분 좋았다.


그는 나처럼 개인주의자였다. 어쩌면 나보다 한수 위였다. 너무 빠지는 게 싫었다는 것이 전 여자 친구와 이별의 이유였다 했다. 여러모로 대단하군 싶었다.


다음날 나는 라마섬으로 갔다. 출발 전 다녀와서 홍콩섬에서 보자는 카톡에도 심플한 이모티콘 하나가 답장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속 사소하고 또 무겁게 생각났다. 길고 외로운 시간 동안 다시 만날 상황만 떠올랐다 제기랄. 뭘 볼 때마다 할 때마다 생각이 블랙홀처럼 그에게 귀결됐다. 섬의 여유로움을 느낄 때도, 좋은 트레킹 코스에도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제 홍콩섬으로 왔다. 그는 나의 모든 톡에 늦게, 단답으로 대답했다. 서운했으나 티 내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다. 몇 번 의사를 물었는데 확실하게 거절이라도 하면 깔끔할걸, 내가 너무 귀찮았던 걸까? 처음 만났던 날, 술을 마시고 내가 했던 이야기를 비웃듯 답장으로 보냈을 때 나는 폭발했다.


정 무료하시면 연하남이나 한인 게하분들과 함께하세요


어린 남자의 (를 연하남이라 칭한 것) 무례에 대해 남자의 입장이 듣고 싶어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저런 답장을 보낸 것이다.


혼자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끝의 광장에 앉았다. 심호흡을 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 보내기로 했다.

더 이상 잃는 것에, 체념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고 후회로 남을 기억이 분명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취미가 같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즐거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계속 생각났어요. 무료한 게 아니고, 그쪽 만나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여행에서 이렇게 지나가버리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근데 나만 그랬나 봐요.
여행에 방해될까 실은 톡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어요. 혹시 그랬다면 미안해요. 이 나이가 되도록 사는 게 아직도 이토록 서투르네요.




내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랬더니,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 며칠 동안 나를 얽맨 감정의 덩어리에서 나오는 기분.


원래 혼자 여행이잖아. 라며 맘을 다시 다잡고 발걸음을 옮겨 올라간 홍콩의 명물 빅토리아 파크는 홍콩의 야경을 보여주긴 커녕 내 맘처럼 안개만 잔뜩이었다.



안개는 가득하고 젖은 바람이 부는데 피크트램 타려는 인파는 끝이 없다. 재난영화 보는 줄.

숙소로 오는 길. 몸 힘들고 맘 삐딱하니 뭔 소린가 싶다가도 또 저 한마디에 기대보고 싶기도 하고.
내일 또 먹으러 올게요!

내일 먹을 운남 쌀국수 토핑은 뭘로 할지 생각하며 이제 자야겠다.


오타와 사진수정은 귀국해서 컴퓨터로.. 까지 하고 자려다가 찌질하게 또 떠오른다.

그럼 그날 왜 그랬는데? 어? 칭찬은 왜 그리 무심하게 계속 날렸는데? 사람 설레게 하는 학원다녔나..

맘도 없으면서 왜 그랬데?


아이고 자야지 주책바가지. 홍콩여행 혼자 온 아주머니 왜이러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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