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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Feb 18. 2019

잊지 않기 위한 기록

생과 사의 중간을 목격한 그 날.

직면하라!


불편한 순간, 잊고 싶은 순간을 우리는 잊고 지낸다. 망각이란 건 얼마나 큰 신의 선물인지.


어젯밤 잠들기 전, 며느라기 책을 다시 펴 봤다가 밀려오는 분노와 짜증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럴 땐 명상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감정이 아니다. 내 마음은 스크린, 이 모든 것은 스크린에 상영되는 일시적인 것들일 뿐 모두 지나가리라.


그래도 인간이 그렇게 쉽게 그럴 수 있나? 나 역시 감정이 덕지덕지 붙은 속세의 동물인 것을. 권위적인 부모님과 좀 모자란 작은 오빠네가 생각났다. 그들에게 이렇게 받아쳤어야 했나? 하는 불편했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겨우 마음을 좀 다스리고 잤더니 오랜만에 대학 선배(라고 부르기엔 뭣한)가 나와 나를 한참이나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도 아주 다이내믹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나의 마음을 투영하고 해소하기 위한 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고통을 피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내 모든 기억을 지우고만 싶다. 그러나 고통 역시 내가 살아있음의 증거다.




보름의 홍콩 여행은 깊고 진득거렸다.

어느 순간은 제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기도 했고, 비행기를 바꿔 돌아올까 싶기도 했으며 어느 순간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내 생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 내게도 올 죽음의 순간에 대해 공포 속에서 오랜 시간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더 작은 도시였던 홍콩에서는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었다. 잠들 수 없던 도미토리 생활의 여러 날들을 나는 겨우겨우 버텨가고 있었다. 극도로 피곤한 몸이 주는 신호 속에서 나는 예민해졌고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무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소음과 더러운 공기, 수다스러운 장소를 피하고 싶었다.


기분 전환을 할 겸 숙소 앞 침사추이에서 홍콩섬으로 건너가 해변을 도는 코스인 973 버스를 탔다. 밤이라 무언가 보일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기분전환을 좀 하고 싶었다. 해변의 펍이 보이면 맥주라도 한 잔 하고 들어올까 싶기도 했다.

우연히 스탠리 마켓 앞에서 내리게 됐다. 거기가 버스의 종점이었고, 인도계로 보이는 여자분이 친절히 설명해주어 이미 문을 닫은 스탠리 마켓을 가로질러 해변을 구경하게 됐다. 해변의 끝에 보이는 멋진 건물은 스파 브랜드의 옷가게였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개도 많았다. 한기가 느껴지는 바닷바람 속에서 사람들과 개를 보고,  해변에 작게 들어선 펍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해변의 끝에 작게 나있는 간이 항구 같은 곳으로 다가가 벤치에 앉았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늘어선 펍들을 지나고 지나,
이 건물 앞으로 보이는 작은 간이 항구의 벤치에 앉는다.



이 날을 떠올리자면 좋아하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신의 한걸음 한걸음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데, 신은 그날 왜 나를 거기 있게 했을까? 그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한참을 앉아 산책 오는 사람과 개들을 구경했다. 바다를 보다가, 그리고 작은 항구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개들을 보다 보니 마음이 좀 풀어졌고 바다도 잔잔했다. 바람은 조금 추웠지만 기분 좋을 정도였다.



나는 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 딱히 볼 것도 없이 왜 오래 앉아 있었을까? 근처에 보이는 스타벅스에 들어갈까 생각도 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입구로 들어오는 작은 의료용 침대와 위에 놓인 엠부백이 보였다. 그리고 항구라고 부르기도 뭣한 작은 이곳으로 작은 모터보트가 오고 있었다. 아, 여기 홍콩은 섬이니 주변에 무인도나 작은 섬도 있겠구나, 거기로 의료장비를 배달해주는 건가? 싶어 가까이 갔던 나는 그 자리에 붙박여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취미로 다이빙을 한다. 몇 가지 보이는 상황만으로 판단이 되었다. 한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

1. 다이빙 슈트를 입은 세 사람이 작은 배에 타고 오고 있다. 정확히는 2명이 입고 있으며 한 명은 상의가 벗겨진 채 누워있다. 사고가 있었을 것이며 포인트를 찾아가서 하는 다이빙의 특성상 육지로 오기까지 시간이 꽤 흘렀을 것이다.

2. 한 명은 접안을 시도한다. 항구가 아니라 그냥 시멘트로 만든 간이 계단에 접안하기 위해 애를 쓴다.

3. 상의가 벗겨진 풍채 좋은 한 사람, 그는 누워있고 허옇고 큰 배가 그대로 드러 나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이 연신 그의 가슴을 누른다. 접안을 시도하던 사람은 틈틈이 구강호흡을 돕는다. 누워있는 사람의 팔에는 시계 모양의 다이버 컴퓨터가 착용된 채 늘어져 있다. 의 완전하게 없다.

 




어디선가 들어 본 말.

CPR을 할 때는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하라는 것, 의식 없는 사람은 고개를 위로하여 기도를 확보하라는 것, 사람의 뇌는 혈액 공급이 몇 분 이상 이루어지지 않으면 최소 뇌사라는 것.


그러나 의식 없이 누워있는 그에겐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가슴을 연신 누르는 손은 한 손이었고, 그마저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처럼 약해 보였으며 고개 역시 아무 방향으로나 계속 쳐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이들은 당황했던 걸까 무서웠던 걸까 둘 다였을까. 모든 처치가 효과적으로 행해지지 못했을 것이었으며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 일반인인 나의 눈에도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그를 바다에서 발견하고, 여기로 데려오기까지 시간이 꽤 흘렀을 것이다. 덩치가 컸고, 배에서 계단으로 겨우 들어 옮기고 몇 개의 계단 이동을 위해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보이는 쇠구루마로 그를 옮겨 올리는 동안엔 그 빈약한 처치마저 시행되지 못했고 사진 속의 구조용 침대로 옮겼을 때 전기충격기를 시도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사용법을 모르는 것인지 작동이 안 되는 것인지 무튼 기계 충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는 동안에도 심폐 소생술은 시행되지 못했다.)

겨우 침대에 눕힌 이의 팔은 자꾸만 늘어졌고, 침대 안으로 팔을 연신 집어넣어주고 있었다. 의식이 전혀 없이 떨어지는 팔이 무서웠다. 그 모든 광경을 옆에서 직접 보게 된 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동시에 그의 몸을 조이고 있을 슈트를 더 편히 벗겨주고 다이빙 컴퓨터를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견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도 몇 초간 들었다. 그는 어떻게 될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자면 최소 뇌사 혹은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온몸이 얼어붙었고, 그 후엔 그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했으며, 이런 광경을 자주 보는 의료인들은 어떨까 싶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이 죽는 혹은 죽어가는 광경을 보는 건 인생에서 흔한 경험이 아니다. 나에겐 그 경험이 지독히 외롭던 여행의 중반에 찾아왔으며, 회상해보자면 나는 그때 감정의 소용돌이와 여러 생각 속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응급차가 떠나기까지 십여분이 좀 넘게 걸렸지만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나 역시 다이버이다.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었다. 아니, 꼭 다이빙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저렇게 될 수 있음을 망각하고, 좀 젊다는 이유로 건방지게 죽음을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럼 나는, 혹시 내일 죽게 된다면 뭘 가장 후회하게 될까? 남들 눈치 보며 산거, 조금 더 용기 내지 못한 거, 즐겁지 않은 일을 한 것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저히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고 트램의 종점으로 가서 가장 긴 트램 노선을 골라서 탔다. 가는 길에 산 밀크티는 마시자마자 제대로 체했다. 트램 이층에 앉아 천천히 스치는 거리를 보며 이런 순간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거창한 질문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집요하게 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는 건 그것들로 채워 넣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만 살기에도 생은 짧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살갗으로 느껴졌다. 이제 내일부터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볼 차례였다. 모르겠으면 직접 해보고 몸으로 부딪히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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