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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Mar 19. 2019

단순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다고 다시 다짐한다.

1. 길리아이르에 도착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긴 비행시간과 환승, 그리고 발리에서 아침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막막했다. 환승지까지 오는 것만도 너무 힘들었다. 다리가 퉁퉁 부었다. 여독을 풀기 위해 공항에서 국수를 두 그릇 흡입했다. 둘 다 맛있고 공항치곤 가격도 저렴했다. 내가 국수를 먹던 그 시간,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 숙소에선 지진이 일어났다.


2.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지만 홍콩에서 본 사건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나 섬에 온 이상, 바다는 꼭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바다뱀이 문제다. 여기서 이미 체류하고 있던 친구가 맹독으로 유명한 바다뱀을 몇 번이나 봤다니, 바닷속 해초도 무서워하는 나는 완전히 패닉 상태. 해초가 없는 곳까지 나아가니 이미 수심은 내 발이 닿지 않고, 수영실력이 그리 좋지 않은 나는 스노클 장비만 대여해서 죽자살자 친구의 꽁무니만 뒤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쿠버 할 때나 보이던 알록달록 열대어들은 물론, 내 나이의 몇십 배는 될만한 대왕 거북이를 보았다. 너무 큰 거북이를 혼자 가까이서 보니 경건하고 두렵다. 한참을 붙박여 바라보다,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친구 뒤꽁무니를 좇아 바닷물을 양껏 먹고 해변에 도착했다. 얼마나 긴장되고 겁이 났던 지 미친 사람처럼 발차기를 했던 덕분에 핀에 마찰된 발가락이 다 까져서 쓰라리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 내게 늘 열심히 인사해주는 동네 청년들이 물에 젖은 내 상태를 보고 수영이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좋았다고, 거북이를 보았다고 하니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 "오늘 너 럭키 데이야."

맞는 것 같다. 내 실력을 모르고 앞서 나가는 친구 덕에 발 안 닿는 바다에서 죽는 줄 알았다. 혼자 돌아갈 자신도 없어 친구를 따라가는 선택지밖에 없었던 내가 수영한 거리는 3km가 넘었다.


3. 지진은 이 섬과 떨어진 롬복 남부에서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머무는 숙소 리셉션 옆쪽이 바닥만 있는 특이한 형태라, 혹시나 하고 물으니 이틀 전 지진으로 모두 무너지고 바닥만 남은거란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그냥 깔렸을 테지.



자꾸 죽음을 잊고 산다.

죽음은 내게 오지 않을 것처럼 산다.

인생을 좋아하는 많은 것들로 채우고자 다짐했음에도 여전히 신나 보이는 액티비티를 보면 체험에 대한 욕구보다 셈이 먼저고, 나를 위한 물 한 병이 아깝다. 그러지 않기로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아진다.


여섯 시면 깜깜 해지는 이 섬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니 아름다워 감동스럽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그것들로 인생을 채우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기로 다짐한다.

언제라도 죽음이 온다면,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가 최소한이길 바라며.


오늘 하루 자전거로 둘러본 해변은 아름다웠고 점심으로 먹은 진한 커리는 맛있었다. 매일을 이렇게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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