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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Mar 21. 2019

예상 못한 뒤통수가 더 아프다

왜 그러셨어요 할모니..

섬에서 잘란잘란 걷는 것과 수영 빼곤 딱히 할 일이 없다. 이 여유가 게으름쟁이인 내겐 편한 옷처럼 꼭 들어맞는다.


지금 머무는 숙소는 아침을 제공하지만 밤에 친 천둥으로 전기가 나가 한잠도 못잔통에 아침시간을 놓쳤다. 피곤한데 잠은 안 오는 새벽이면, 왜 그리 먹고 싶은 것들만 생각나는지. 섬은 해가지는 것과 동시에 사방이 깜깜해지고, 일부 파티를 하는 바를 제외하곤 식당들도 모두 닫아 밤하늘엔 사막에서처럼 쏟아지는 별들이 보인다. 어찌나 선명한지 반짝임과 색깔까지 눈에 보일 정도로 아름답다. 아, 그 아래서 맥주 한잔과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가 태국처럼 야간 식당이 있다면 난 필시 몸을 열심히 불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밤의 고요 속에서 나는 내일 먹을걸 열심히 머릿속에 떠올리고,

적어볼 수 밖에.


정전으로 밤새 뒤척인 아침, 자전거 반납을 위해 맞춰둔 알람에 억지로 눈을 떴다. 딱히 식욕은 없었지만 전날 새벽 내내 생각해둔 리스트대로 모든 메뉴를 푸드파이팅 하기 위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숙소 바로 앞엔 레스토랑은 아닌, 로컬 사람들이 가는 밥집이 있는데 나이 든 할머니가 장사를 하신다. 물도 몇 번 사서 안면도 있고 무엇보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터라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자전거를 반납한 후 나시 짬뿌르를 시켜보았다.

 잠에서 막 깼음에도 거부감 없이 입에 잘 맞았더랬다. 좀 부족했던 나는 가두가두라는 땅콩소스 샐러드도 시켜보았다.


무난했다. 다른 식당보다 양은 작았지만 먹을만했다.


다 먹고 셈을 하는데, 음식값이 5 만루 피다. 이상하다. 어떻게 식당보다 비싸지?


내내 찜찜했던 차에 오늘 아침 요가 가는 길에  마당을 쓸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만나 어제 상황을 설명하니, 두 개에 2만이 적정 가격이란다. 내가 재차 묻자 아마 이방인으로 보이는 머리 색깔 때문이 아니겠냐고.


요가를 하는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왜 나를 속였을까?


두배도 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냔 말이다. 마침 거기서 밥을 먹고 있는 청년이 있어 다시 물으니 1만 루피가 정가라고, 비싸도 1.5만 루피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식사 중인 그에게 통역을 부탁해 할머니와 대화를 시도했다. 좀 전에도 말을 꺼냈지만 말도 안 통하고, 못 들으신 건지 피하는 건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만 질렀더랬다.

그녀는 나시 짬뿌르 2만, 가두가두 3만이란다. 참고로 내가 다른 레스토랑에서 먹은 가두가두는 이랬다. 양은 세배쯤, 가격은 2만이었다.



완강히 아니라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할머니의 제스처에, 식사 중인 청년을 더는 방해하기 싫어 그대로 돌아서 게스트하우스로 왔다. 나는 이제 다시 저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그래서 관광지의 사기라곤 없을 것 같던 순박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맞으니 쓰라리다. 예상치 못하고 맞은 뒤통수는 예상보다 아프고 씁쓸하다. 예전의 나라면, 배낭여행자들을 괴롭게 만드는 이런 행동들을 끝까지 따졌을 것이다. 아니, 먹기 전에 가격을 먼저 확인했겠지.


씁쓸하다. 왜? 할머니가 적어도 사기를 안칠 거라 믿은 나의 편견 때문에? 억울해서? 모르겠다. 그저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월등히 높은 물가에, 그것마저 속이려드는 현지 사람들 때문에 피곤했다. 나름 잘 피해왔다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당하니 짜증이 솟는다. 손해 본 돈이라고 해봤자 삼천 원 남짓이지만, 이럴 때면 나는 씁쓸해진다. 여행자인 우리가 그들의 삶을 바꿨을까? 그렇다고 그러한 행위가 정당하다 할 수 있나. 원래 로컬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그런 건가. 왜, 곳간에서 인심 난 다지 않나. 상대적으로 궁핍할 가능성이 높은 그녀가 날 보니 순간 욕심이 났을까.


나이 듦과 인간적 성숙도가 비례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시골사람이 순박할 것이라는 것 역시 편견이다. 한쪽 눈은 백내장이 온 것인지 이미 백안이고, 나이가 많아 보이고, 무슬림 차림인 그녀를 신뢰까진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았을 거란 생각을 내 멋대로 한 것, 적어도 나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충실히 편견을 따른 꼴이다.


돈과 시간을 만들어 여행 온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 때문에 맘이 상한다.


이거 뭐 히잡이라도 써야하나..


덕분에 요가도 하는둥 마는둥,  여러가지를 놓쳤다.

씁쓸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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