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인터넷을 켜보다 깜놀. 검색어 1위에 베드버그가 뙇!! 내가 어제 종일 검색해서 그런 건가 하고 잠시 오버스러운 생각을 해 보았다. 어제 22일, 여행의 소중한 하루를 순삭 하게 만든 이 죽일놈의 베드버그. 그 존재의 무서움을 넘나 잘 안다. 헝가리 노란 바지 아줌마네서 물린 베드버그는 체코까지 날 따라와서 팔은 물론 얼굴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체코에 와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던 습격은 (계속 물린 자국이 새로 생긴다) 옷을 뜨겁게 빨고 온몸을 빡빡 씻고 5일쯤 지나서야 더 올라오기를 멈췄더랬다. 하.. 흉터와 간지러움은 한참 더 지난 후에야 겨우 진정됐고..
유난히 벌레를 타는 체질이다. 저번 방콕 한인숙소에서, 얼마 전 홍콩 라마섬 숙소에서도 물린 흔적이 아직 남아있건만, 이번엔 어디서 이렇게 물린 건지 출처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숙소는 현재 한 군데서 묵었기에 후보는 여긴데, 위생상태가 엄청나게 좋진 않아도 또 나쁘지도 않고, 옆방 한 달 넘게 묵는 케이시가 멀쩡한 걸 봐서 숙소는 아니다. 해변이나 물가 어디, 혹은 길 전체가 동물농장인 곳이니 길에서 물렸을 가능성도 있다.
길가다 본 도마뱀인지 악어인지.. 심장 떨어지는줄
가져온 항히스타민제는 이미 다 떨어졌고, 간지러움을 못 참고 긁느라 잠도 설친다. 임시방편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 먹는데 낮엔 몽롱하고, 밤이면 눈이 말똥말똥. 왼쪽 다리는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게 촉수로 빨린 것 같고 (극혐이라 사진을 올릴 수 없다) 이외에도 군데군데 흔적이 있으며 양 어깨와 날개뼈 부근도 난리다. 약을 바르려고 거울을 볼 때마다 징그럽다. 온 힘을 다해 긁지 않으려 애쓰지만,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긁다가 깨버린다. 약국에서 임시로 산 항히스타민제를 자기 전 한 알만 먹으라는 의사 말은 벌써 어겼다. 클리닉을 가니 약은 약국처럼 그저 그런 수준인데 치료비가 너무너무 비싸다. 여행자 보험을 들고 왔지만 영수증 외에 필요한 서류를 써 줄 정도의 영어는 안 되는 것 같아 포기했다. 여긴 섬이고, 보험회사가 인정해줄 만한 진단서나 소견서를 써줄 만한 병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울적해진다. 혼자 연고 바르고 약 사서 먹고 흉 지지 말라고 코코넛 오일 바르고, 혹시나 물벼룩이 있을까 해변도 조심해야 하고..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예쁜 섬에 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아, 여긴 약국이나 클리닉에 체중계가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별일 없이 그냥 들러 체중을 재보고 간다. 나도 약 사러 들른 김에 체중을 재어보니 60. 다시 재보는데 옆에 아저씨가 와서 보곤,
Oh You are sixty? oh same same me
아 쉬펄 어쩌라고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구만.
암튼 어제는 약에 취해, 알러지로 인한 열 때문에 최소한의 외출만 했고, 종일 숙소에 잠에 취한 채로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밖을 나가면 하늘은 핑핑 돌고 머리는 어질어질하여 나는 병든 개처럼 골목을 기다시피 다녔다.
병든 개는 동네 슈퍼까지 기어가 제일 강력하다는 스프레이를 사고, 간지러워 죽는 것보다 질식해 죽는 것을 택하여 필사의 각오로 스프레이 한통을 비워내듯 뿌려댔다. 제발, 제발 효과가 있기를
2. 아침에 요가를 갔다. 몇 명은 바디 리프팅 (손 짚고 몸을 올리는 동작)이 되는 수준급 요기들이다. 한국에서 요가를 한 적이 있어 몇 단어는 알아듣지만 옆사람을 보며 눈치껏 따라 하느라 명상은 저 멀리멀리. 티쳐 말씀도 몇 단어만 들린다. 옆사람 따라 하랴 티쳐 말씀에 집중하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드는 생각. 와, 아무것도 모르고 쌩으로 왔으면 새될뻔했네.
친절한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 다행이다. 나처럼 동작이 더디거나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방향치에겐 따로 와서 자세를 교정해 주시는데 예전엔 그런 것들이 그렇게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개인지도를 받을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은 극복한 지 오래다. 장하다.
요가가 끝나고 짐 정리를 하는데 요가 티쳐가 혹시 댄스나 다른 운동을 한 적이 있냐 물으신다. 딱히 없다고 하니 골반과 배 선이 너무나 잘 정돈돼있어 보기 좋고 동작이 괜찮다며, 좀 더 수련하면 굉장히 좋아질 거라 신다. 아놔, 혹 해서 추가 등록할 뻔.
3. 인도네시아 물가 정말 너무 비싸다. 특히 교통수단과 공산품은 경악 수준. 태국의 물가에 익숙해진 나는 조금 우울할뻔했다.
여긴 거북이가 나오는 섬이다 보니, 거북이 출몰지역에서 스노클링을 하는데 혼자 장비를 빌려 바다에 나가 느낀 건 내가 쫄보라는 것. 혼자 스노클링 하면 너무너무 무섭다. 그냥 바닷속이 무섭다.
원래 하루 장비 대여가 5만인데 해 질 무렵 1시간만 쓴다고 2만에 쇼부를 봤지만 30분도 안돼 돌아왔다. 혼자가 무서워 암것도 제대로 못 봤다 하니 스노클링 샵 옆집에 사는 테디가 내일
같이 가겠단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오늘 갔으나 테디는 자고 있다는.. 갑자기 샵 주인이 날 해피하게 해 주겠다며 웃통을 벗더니 고프로까지 챙겨 같이 들어가자며 앞장선다. 오늘도 한 시간만 할 거라고 2만 루피 지폐를 주고, 당당히 같이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얘 수영 잘 못하는 것 같다. 물속에서 발버둥이 심상치 않다.. 아이고야.. 심지어 내 팔을 잡고 버둥댄다. 배 나온 물개가 버둥대는 꼴이 안쓰러워 근처 배 난간을 잡고 쉬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온 손이 내 허리 위쪽을 감싸며 하는 말. 남자 친구 있어? 이새뀌 봐라. 아, 또 여행지에서의 잡놈 플레이 시작이군. 솔직히 수영을 못한다면 바다 한가운데서 패닉 오기 딱 좋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이후 이어진 대화가 더 가관이다.
나 결혼했어
진짜? 인니 남자 친구 어때? 너 애들은 어딨어?
내 말을 전혀 안 믿는 눈치다. 이들 문화에선 결혼을 했다면 당연히 아이가 있을 것이란 생각과 여자 혼자 다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거겠지. 솔직히 이때부터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내가 결혼했다고 해서 그런지 더 깊은 곳으로, 다른 곳으로 가보지도 않고 리턴이다. 근데 돌아오는 길 거북이가 보인다. 거북이는 여전히 신비롭지만 기분이 영 아니다. 거북이를 따라 헤엄치는 중에도 머릿속엔 잡생각만 가득하다.
뭍으로 나와서 어제처럼 샵 앞에 있는 수도로 대충 씻으려는데 갑자기 나한테 자길 따라 오란다. 의심 반으로 따라갔더니 화장실 비데로 샤워하란다. 거긴 반쯤 닫힌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허그해줘. 답도 하기 전에 내 허리를 낚아채고 키스미를 연발하는데 정색하며 밀치고 다시 샵 앞으로 와 어제처럼 수도로 씻었다. 예전의 나 라면 개지랄을 하고 분에 못 이겨 하루를 망쳤겠지만 이제는 아 개자식 쒸팔 하고 만다. 이름까지 물어보고 왔다 와디,와리, 뭐가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무튼 개자식. 세상은 넓고 개자식은 왜 이리 많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