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다가도 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바로 인생의 숙제 같은 아버지와의 관계. 어릴 때 아버지와 따로 살게 된 이후로 왕래도 연락도 없이 지낸다. 성인이 된 후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지내는 편이 차라리 덜 괴롭다는 걸 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마음이 한결 나아질 때까지 이렇게 지낼 것이다. 서로 기대하는 것 없이 지금처럼만 각자 잘 살면 좋겠다.
부모님이 이혼 전에 별거하셨던 적이 있어서 그때처럼 잠깐의 헤어짐일 거라 생각했지, 당시엔 이렇게 영영 남처럼 살 줄은 몰랐다.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아침에 바뀐 환경에 또 적응해야만 했다. 엄마를 따라가느라 전학도 참 많이 다녔다. 작별 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가족과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아픔을 헤아려 주는 어른이 없어서 내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각자가 달라진 삶을 살아 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누가 누구를 돌볼 처지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과거에 얽매여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괴로웠다. 청소년 시기에는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혼란스러웠다. 그 분노의 대상이 가장 가까운 엄마로 바뀌기도 했다. 심적 여유가 없기도 했고 엄마는 이런 부분이 자신의 상처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화로 풀어가지 못했다. 불편해서 그런지 회피하기 바빴고 나는 또 내 감정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모녀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보고자 부단히 애썼다. 종교는 없지만 어떤 불교 수련 캠프에 가서 절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마음을 살폈다. 법문을 듣기도 하고 심리학 서적을 찾아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고자 노력하고 노력했다. 실제로 그 마음이 커져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지난 시간의 상처는 여전했고 한동안은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과거에 받지 못한 위로를 스스로라도 해 주어야 했다. 자꾸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서러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슷한 상황만 나와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가슴 아파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을 보면서 그 나이의 자신이 떠올라 슬퍼했다. ‘마땅히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왜 그래야만 했을까.’ 감당하기 버거운 것들 속에서 내면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고 성장한 나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
심리 상담가를 찾아갔다. 사실 답은 그분이 찾아 주신 것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데,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는 것 자체로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연락해 보는 것을 과제로 받았다. 그를 떠올리면 아직도 무섭고 고통스러워서 못하겠다며 여러 차례 거절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실행에 옮겨 보기로 했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 다른 이들은 뭐가 어렵나 싶겠지만 내게는 그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연락처를 몰라서 아버지께서 재직 중인 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주소를 찾았다.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적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최소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친 것 같아 후련했다.
“(중략)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드는 지난 몇 달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과거에 쌓으신 덕으로
제가 인복도 얻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아버지께 보낸 이메일 중에서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럼에도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태어나 자란 곳에서 지내면서 틈틈이 젊은 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마다 ‘부모님 또한 모든 일이 처음이라 쉽지 않으셨겠구나.’라며 그 입장을 헤아려 보았다. 0에서 시작한 것 같지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좋은 것들은 이미 나한테 많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들과 엄마의 희생 없이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늘도 한층 더 성숙해진다. “감사합니다, 엄마. 그리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