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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l 08. 2020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돼.

미국에서의 첫 일터, 동료들과 함께.


미국에 와서 내게 주어진 첫 일터는 루이지애나식 해산물 전문 식당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건 대체 어떤 미국 음식일까? 대게, 새우, 민물 가재, 조개, 홍합, 옥수수, 소시지, 감자 등 여러 메뉴에서 원하는 것들이 찐 요리로 취향에 맞게 고른 소스와 함께 봉지에 나오면, 그걸 봉지째 흔들어 충분히 섞어 주면 된다. 앞치마를 두르고 손으로 먹어야 제맛인 이 해물찜은 맛을 즐기는 중에 테이블에 쌓여 가는 해산물 껍질을 보는 재미도 있다.

중고 자동차를 구하며 도움을 받던 분의 지인이 마침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사람을 더 구한다기에 무작정 찾아갔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자신은 없었다. 다만 일이 절실했기에 면접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일정을 잘 조정하면 학교 다니면서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싶어 일단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을 접어 두고 도전했다.

자동차도 못 구한 상태에서 급하게 출근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난감했다. 감사하게도 발이 생길 때까지 주변 사람들이 오며 가며 태워다 주곤 했다. 이즈음 많이 느꼈지만,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혼자는 이룰 수 없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온전히 내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식당 문이 열리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용기를 냈다. 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거는 것처럼. 처음에는 안 되는 영어로 손님을 마주하려다 보니 목소리도 덜덜 떨리고 말도 더듬었다. 긴장해서 실수도 꽤 했다. 꼼꼼하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테이블을 동시에 맡다 보니 주문이 잘못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시간이 지나자 일이 차츰 익숙해졌고,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잘 못하는 편인데 덕분에 기술이 향상된 듯하다. 미국의 팁 문화도 몰랐으면서 팁으로 돈을 벌었다. 손님이 자리를 떠나고 계산서와 남긴 팁은 그들에게 내 일을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 수입이 쏠쏠한 날은 뿌듯했다. 자주 찾아오는 손님을 반가워하게 되고 어느새 나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일했으나 돌아보니 참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진짜 미국 사람들(한국인 룸메이트들과 살면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미국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는 승무원으로 일하게 될지 몰랐지만, 미국의 주류를 접해 보는 것도 후에는 도움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트에 가면 이제는 제법 익숙한 술들이 보인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아서 모든 것이 생소했던 나에게 이 정도도 큰 발전이다.

물론 너무 몰라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미국에 ‘SweetWater’라는 맥주가 있는데, 승무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메뉴는 알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이름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요청한 승객에게 물었다. 물에 설탕을 타서 드리면 되겠냐고. 그분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고 재밌어하셨고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식은땀이 났던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시간은 조절하기 나름이었다. 문제는 일과 학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고된 육체노동에 피곤해서 그날그날 해야 하는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아무리 계획 없이 일 년 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왔어도 목적이 수단과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몸을 덜 쓰는 일로 바꾸기로 하면서 첫 일터를 떠났다. 새 운동화가 바닥이 닳도록 열심히 일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뛰다가 무릎이 깨질 듯 심하게 넘어져도,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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