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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l 02. 2020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삶의 터전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꾼다는 것.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은 굉장히 무모한 결정이었다. 숨만 쉬어도 월세 같은 비용이 드는데 이를 어디서 감당할 것인가! 걱정은 되었지만 현지 상황을 전혀 몰라서 딱히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한편, 미국에 오면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사회복지법인과 사회적기업에서의 짧은 경력을 토대로 다른 길을 모색하려고 했으나 막막하기만 했다. 전공을 살리고 싶어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이, 그것도 학위를 미국에서 받지도 않은 이민자가 특정한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 본토에서 안정적인 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조언을 구했더니 학교를 다시 들어가는 것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도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들 했다.

미국에 사는 한국 이민자들은 이 땅에 어떻게 정착했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세탁소, 도넛샵 등 개인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한인들이 종사하는 곳 같다. 그리고 조언해 주신 분들에 따르면, 전문직을 찾기 위해 학교에서 흔히 공부하는 쪽은 간호학, 회계학 등의 학문이었다. 현실적으로 취업을 고려하기 때문인 듯하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같은 조건이라면 굳이 이민자를 채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미국인들에게 비인기 직종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더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자본과 비즈니스 관련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학교를 가는 것이 맞았다. 접해 보지 못했던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인생에 또 다른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 기뻤다. 나를 다시 찾는 과정이 될 것이고 안 그래도 걱정인 언어를 훈련하고 낯선 문화를 배우는 장이 생기는 것이기에 경제적인 부분만 허락한다면 바람직한 길이었다. 그래서 대학 때 전공했던 학문과 그나마 연관성 있어 보이는 간호학으로 정하고, 지낼 곳이 정해지자마자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했다. 언어도 자유롭지 않았지만 용기 내어 TSI(Texas Success Initiative) 테스트를 보고 전공 과정의 선수 과목을 듣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일을 구했다. 가릴 것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담대함이 필요했다. 달라스에서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마다 일을 구하고 있노라고 광고했다. 그러다 당장 면접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 마음이 조급한 와중에 살 길이 생겨 감사함을 느꼈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성급함으로 난처하게 되었다. 텍사스에서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못 구했으니 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덜컥 출근부터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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