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한 번에 터진다 2
사람들은 운전에 익숙해지면서 어디든 수월하게 다닌다던데 나는 반대였다. 운전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첫 사고를 겪고는 이전보다 겁이 많아졌고 늘 긴장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속도로도 이용하지 못했다. 대신 조금 돌아가더라도 시간을 넉넉히 잡고 로컬 도로를 이용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불안해서 인지 지인들은 같이 이동하는 경우 한동안 나를 운전석에 태우지 않았다. 덕분에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에서는 무서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동네에서는 긴장을 늦추고 새로운 곳도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즈음 갑자기 이별이 찾아왔다. 미국에 오자마자 중고 자동차를 찾아다니며 시작된 그와의 연애가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낯선 땅에서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되기도 전에 만남이 시작되어서 헤어지고 나니 알지 못하는 우주에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많이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너지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용기를 내려고 해도 그 자동차만 타면 추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흘렀다. 매일 울면서 운전하는 것이 아슬아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서 밝힌 집에서 쫓겨난 일이 있었고 새집에서 안정을 찾아갈 무렵 큰 사고를 겪었다. 몇 달이 흘러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하루는 운전하는데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소리 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고 그러다 쿵 소리와 함께 놓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면서 멈추었어야 했던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던 것이다. 앞차를 그대로 박았다. 고속도로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인명 피해가 있을 뻔했다.
일단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자동차가 심하게 찌그러진 바람에 문도 잘 열리지 않아 겨우 밖으로 나갔다. 상대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차부터 민망할 정도로 멀쩡했다. 울면서 전방을 주시하지 못한 나의 과실을 상대 운전자에게 그대로 설명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처음이 아니라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에 경찰부터 불렀다. 사고 진술을 하면서 충돌에 대한 내 잘못이 너무 명확하여 바로 시인했다. 운전면허증과 보험증을 제시하면서 경찰 리포트를 마쳤다. 상대 운전자와는 보험사를 통해 사고를 처리하기로 하고 정보를 주고받고 자리를 떠났다. 차는 견인되었다. 집에 걸어갈 수가 없어서 집주인 할머니께 연락을 취했다. 할머니가 놀라실까 봐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전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 톤으로 전화해서 오히려 걱정하셨다는 할머니.
이로써 나의 첫차는 폐차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당면한 문제들이 쌓여 있으니 슬퍼도 울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뒷목 통증이 있어서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당분간 발이 되어 줄 차도 렌트해야 했다. 어렵게 구한 것인데 중고 자동차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점에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감사하게도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셨다. 평소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시는 할아버지는 기계를 잘 아셨고, 적당해 보이는 차를 찾아 거래를 하는데 흔쾌히 동행해 주셨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불과 교통사고 한 시간 전만 해도 영화나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짐을 찾으러 갔다가 폐차 직전에 마주한, 처참하게 파손된 내 차가 이것이 현실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던 그 차와도 이별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제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큰 사고였음에도 내 목숨은 붙어 있었다. 위기에도 살 운명이었고 그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살아 낼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고 복잡한 과정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나는 단단해졌다. 생각보다 강인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