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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n 10. 2020

뚜벅이가 홀로 서는 연습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하고 주차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본 나의 첫 자동차. 행여 다른 차와 부딪힐까 저리 멀찍이 세워둔 게 귀엽다.


나 홀로 미국에 가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던 그때로 돌아가 본다. 자동차를 구하는 것부터가 막막했다. 미국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가 아닌 이상 운전이 필수다. 특히나 텍사스 같은 곳은 땅이 널찍하여 건물들도 띄엄띄엄 있어서 가까운 곳도 걸어갈 수가 없다. 처음에는 몸을 좀 움직여 보겠다고 집 근처 공원에 가려고 해도 일단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게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한국처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게 편리한 일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출퇴근하면서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괴롭다고만 느꼈었다. 그런데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가 생기기 전까지는 발이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장을 보고 학교를 등록하고 일을 하러 다니면서도 차가 없어서 한동안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간 내 발이 되어 주었던 지하철과 버스가 새삼 고마워진 시간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고 자동차를 찾았다. 잘못 구매했다가는 반복되는 고장으로 비용 아끼려다가 수리 비용이 더 들 수 있어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알음알음으로 자동차를 잘 아는 분을 소개받았다. 그 지역의 한 대학 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유학생들이 미국 생활을 시작할 때 도움을 많이 주시는 분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나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셔서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그때 한 달가량 뛰어다녔던 경험으로 기계의 기능적인 부분은 몰라도 어떤 것을 신경 써서 봐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예산에 맞는 십 년 정도 된 적당한 소형차를 찾았다.


달라스에서 집도 차도 구하고 이제 한시름 놓았나 했는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가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일들이 허다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요청하다 보니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아서 가능한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성격을 알아챘는지 룸메이트들이 먼저 도와주겠다며, 한두 번 정도 운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주었다. 그러고서는 바로 실전이었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운전해서 학교에 가고 일터에 왔다 갔다 하는 것.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성취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주차하고 뿌듯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사진으로 기록까지 했다.


이후 한동안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다닐 수는 있었지만 미국에서 신분증에 해당하는 운전면허증부터 해결해야 했다. 텍사스주의 경우 한국 면허증을 가져가면 주 면허증으로 교환해 주는 제도가 있다. 그렇게 하면 텍사스주 면허증에 한국 면허증에 있는 이름이 그대로 들어갈 것이다. 나의 경우 미국에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미국 이름(출생증명서에 있는 공식 이름)만 사용한다.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제시해야 하는 게 신분증인데 한국 이름과 미국 이름이 달라서 번거로울 것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차라리 시험을 다시 보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편이 나았다.


한국에서 장롱면허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영어로 필기시험을 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고, 실기시험도 겁이 났다. 가족이 있었다면 쉽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유학생 룸메이트들과 따로 살게 되었고 그들은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만났던 연인과도 바로 헤어져서 가까운 친구도 없었다. 일이 끝나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직접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혼자 평행 주차 연습을 했다. 시험 보러 간 날은 하필이면 장대비가 쏟아져서 ‘역시 내 인생에 쉬운 일은 없구나’하며 괜히 서러웠는데, 다행히도 무사통과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이민 초기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던 자신을 토닥토닥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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