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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n 06. 2020

안전이 우선이야.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동거 2

시간이 지날 수록 늘어만 가는 짐들에 이사가 부담이 된다.


미국인과 살아 보기 도전! 그 과정에서 찾은 다음 거주지는 멕시코에서 이민 온 중년 여성의 집이었다. 고등학생인 딸과 둘이 산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나도 어머니께서 어렵게 키워 주셨다며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을 표했더니, 내가 혼자 집을 떠나 멀리 온 것에 마음이 쓰였는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그분은 기도와 함께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셨다. 그분의 딸과는 안 되는 영어로 인사도 하고 영화도 보며 가끔 시간을 같이 보냈다. 아참,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도 있었는데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 불편해도 반려동물이랑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시 감당하기 힘들었던 사건을 겪었을 때 말로 다 못하는 위로도 받았다.


그런 평화도 잠시,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처했다. 멕시코에 있던 집주인의 성인 아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미국에 있는 가족을 보러 잠깐 놀러 온 것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는 동거인이 되어 있었다. 방은 2개인데 집주인 가족 3명이 한 방을, 나 혼자 다른 한 방을 사용하는 상황과 낯선 남성이 같은 공간에 지내게 되는 게 불편해서 이달까지만 살고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아들에 대한 얘기는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고 기분이 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친구들과 살아 볼까 한다고 했더니 당장 내일모레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계약과 달라진 환경이니 환불이라도 해 달라고 따졌다. 먹히지도 않는 얘기였다. 큰소리를 내며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이 나서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돌변한 표정이 섬뜩했다. 총기 소지가 합법인 주인만큼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미국에서는 저렴한 곳을 찾다가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현실을 배우게 되었다. 환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구한 그 아파트는 사실 안전한 동네는 아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일은 하러 가야 하는데 단 며칠 만에 다른 방을 구해 이사를 가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한 달을 다 채운 시점이 아니라 중간에 세입자를 구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여러 조건이 맞는 곳을 갑자기 구하기가 어려워 주변에 상황을 얘기했더니 급한 대로 본인의 집으로 오라고 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겨우 두어 번 만났던 분이라 조심스러웠고 혹시라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관계가 어색해지는 일이 발생할까 염려되었다. 고민하다가 그 제안을 거절했으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이쯤 되자 급하게 갈 곳이 필요하므로 원하는 모든 조건을 따질 수는 없었다. 미국인 가정이고 뭐고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바로 입주가 가능하기만을 바랐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한 한국 노년 부부의 집을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가야 해서 한밤중에 양해를 구하고 방문했다. 딱한 사정을 듣고 그분들은 나를 따뜻하게 받아 주셨다. 종종 한국 음식도 나누어 주셨고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족처럼 잘 따랐다. 편안함 속에서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옆방에 들어온 또래 친구도 나도 그 집의 좋은 기운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얻었다.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고 타주로 가서도 쉬는 날 찾는 이곳은, 달라스를 고향으로 느끼게 해 주는 장소가 되었다.


혹자는 결국 미국에서 한국인과 살면서 왜 고생을 사서 했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 배움의 과정이었다. 고생은 했지만 이사를 다니면서 아파트와 주택처럼 다른 형태의 미국 주거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 가족과 살면서 어울려 본 경험도 생겼고, 안전한 동네를 찾는 것이 이 나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출신 지역, 나이, 직업 등 같이 사는 사람들의 다양성 덕분에 미국을 또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큰 어려움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우리 속담에 ‘막다른 골목이 되면 돌아선다’는 말이 있듯이, 이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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