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따 Jun 05. 2020

어디서 살지?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동거 1


미국에서 홀로서기, 그 첫걸음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거주할 곳을 정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태에서 간 것이 아니므로 매달 고정적인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월세를 낮추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제일 만만한 게 방을 빌리는 형태였다. 낯선 도시에서 동네를 알지도 못하는데 바로 구하기는 무리여서 처음에는 한 달간 머물 곳을 찾았다. 한국에서 달라스로 이민 온 지 40년쯤 되는 가족의 집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돌아보니 이민자의 나라에서 태생이 그곳인 미국인보다는 그분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훨씬 도움이 되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처음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 학교 프로그램으로 필리핀에서 12명의 친구들과 일 년간 기숙사 방을 공유했던 경험이 있어서 두렵지만은 않았다. 평생을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와 동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유치하지만 엄마, 동생과 같이 살 때는 갈등의 씨앗이 나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이 기회에 내가 항상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부끄럽게도 남에게 하는 것처럼만 배려하면 가족과의 갈등은 거의 없는, 자신의 이중적인 면모를 인식하고 있다. 그 정도로 인간관계는 넓지는 않아도 원만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배려만으로 타인과의 동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라스에서 지낸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사를 세 번이나 해야 했다. 낯선 곳에 정착하는 데에는 그만큼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


미국에 도착 후 한 달이 지나 나의 거처가 되었던 곳은 한국인 유학생 둘이 살고 있는 아파트였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한국과 이름만 같지 개념은 달라 보인다. 우리에게 아파트는 편리하여 일반적인 거주 형태이고 사람들은 아파트 브랜드를 따지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개별적으로 구매할 수 없고 전세도 아닌 월세로 사는 곳이다. 신용도가 없거나 낮은, 이민 초보자들이 융자를 받아 콘도나 주택을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아파트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미국인들은 고소득이지 않는 이상 사회 초년생일 때는 보통 수준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계약금이 모이면 주택을 구입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인 경우에 이런 주거 형태(고급 아파트를 뜻하는 것은 아님.)를 선택하는 듯하다. 나의 첫 룸메이트들은 학생이었기에 월세를 나누어 내는 것이 서로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중고 자동차도 구하고 일자리도 찾고 학교도 등록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미국까지 왔는데 주로 한국어만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인생에서 20여 년은 한국에서 살았으니 향후 20여 년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 보겠다며 대단한 결심을 한 것 마냥 서울을 떠나 놓고서는 익숙한 것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반년 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 겨우 편안해진 공간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마침 룸메이트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 잠깐 다녀오는 시점이라 그곳을 나서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셋이 자매처럼 의지도 하고 정이 들어서 이사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이때는 미국인 가족이 사는 집에서 방 하나를 빌리고 싶었다. 자연스레 집주인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언어도, 문화도 알아 가자는 생각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한 중년 여성의 집에서 방을 보러 오라기에 찾아갔다. 모든 조건이 괜찮아 보였고 순조롭게 계약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아직은 불안정해 보이는 나의 삶의 모습 때문인지 내가 마음에 든다면서도 갑자기 연락을 끊어 버리는 게 아닌가. 거절해도 상관없는데, 아니라는 답변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한순간 단절해 버리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황당했다. 겉으로는 호의적으로 대하더라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미국인을 그렇게 만났다.

이전 07화 나를 위한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