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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n 04. 2020

나를 위한 도시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자 다들 의아해했다. 가까운 친구들이 아닌 이상 속사정을 알리 없었으니 뜬금없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미국도 미국이거니와 왜 하고많은 도시 중 하필 ‘달라스’이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에서 만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동네에서 놀 수 있는 게 쇼핑하기와 맛집 찾아다니는 것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젊은이들에게 놀 거리가 만족도 높은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은 학업이나 직장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집 밖에서 가능한 활동이 다양하지 않아서 다른 관점에서는 기혼 남녀들에게 미국 어느 곳보다도 가정에 더욱 충실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서부처럼 환상적인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후가 온화한 것도 아니고 동부의 어느 도시들처럼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이 다채로운 것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달라스에서 자동차를 타고 로드 트립을 가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재미없는 길이 펼쳐진다고들 한다. 졸음운전하기 딱 좋은 풍경이다. 날씨는 사막성 기후로 여름에 단순히 덥다기보다 굉장히 건조하고 뜨겁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잠시만 세워 놓아도 그 안이 뜨끈뜨끈 달구어져서 이동하는 동안 익는 느낌이 든다. 차량용 햇빛가리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겨울에는 눈이 쌓이는 것을 보기 힘든 편이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사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늘 떠나고 나면 아쉬워한다. 유학이나 주재원으로 미국에 잠깐 머물렀다가 원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 간 지인들 중에도 달라스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꽤 많다. 지나고 보니 좋은 기억만 한가득인 것은 여기에도 적용되나 보다. 이럴 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머무르고 오지 않은 미래에 기대를 걸기보다, 누릴 수 있을 때 현재의 삶을 만끽해야 한다.


미국에서 어디를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을 때면, 고민 없이 달라스라고 대답한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는 또 다른 가족 같은 분들이 생긴 그곳은, 나에게 태어난 곳 그 이상의 장소가 되었다. 엄마의 경우는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지내야 했고 너무나 외로운 타지 생활로 결국 귀국했다. 그럼에도 내가 당시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단어를 던질 때면 엄마의 미소를 엿보게 된다. 순탄한 삶은 아니었어도 달라스에서의 좋은 기억은 엄마도 나와 같이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런 기억을 함께 떠올릴 수 있어서 기쁘고 젊은 날의 엄마를 그려 보며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다.


아쉬운 점을 열거했으나 알고 보면 장점이 많은 곳에서 다사다난했던 여정이 시작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면서도 한국어만 고집했다던 나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처럼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한국어만 사용하고 자랐고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미국에 갔으므로 언어의 장벽이 너무 크기만 했다. 게다가 텍사스 특유의 웅얼거리는 말은 처음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느린 말투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 고마운 점이기도 했다.


‘달라스’ 하면 미국 사람들은 큰 도시를 떠올리겠지만 보통 많은 이들이 다운타운보다는 한적한 북달라스에 거주한다. 그곳은 사실상 시골이라 할 수 있다. 텍사스는 땅이 매우 넓기 때문에 집들도 띄엄띄엄 있고 거주지의 형태가 아파트보다는 하우스가 많다. 한국에서는 귀촌한 친구를 따라 이사 가고 싶었을 정도로 복잡한 곳을 싫어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나를 위한 도시인 것만 같다. 지금 살고 있는 미시간만큼 혹독한 추위도 없고 그 정도 뜨거움이라면 나에겐 충분히 좋다. 더군다나 텍사스의 하늘은 언제 봐도 끝내주게 아름답다. 동네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고달픈 하루를 보냈어도 물감을 푼 듯한 석양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하늘을 보면서 달라스를 생각하는 날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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