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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Jun 08. 2020

같이 살아 줘서 고마워.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동거 3


미국에서 승무원 일을 시작하면서 정든 달라스를 떠나야 했다. 우리 항공사의 경우 출퇴근해야 하는 베이스가 텍사스에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해도 되기는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일에 적응하고 정착할 도시를 정하기 전까지는 체력적인 소모를 최소화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족 때문에 이동에 제한이 있는 게 아니라서 크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훈련을 마치고 최종 합격 후 베이스를 아틀란타로 정하고 새 도시와 만나게 되었다.


이 직업은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가 점차 인상되므로 신입 승무원의 주머니 사정으로 미국 생활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어서 평소에 내던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동료들 중에 이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살기로 했다. 물론 나와 같은 자유로운 몸들이었다. 집을 구하는 것부터 같이 풀어야 할 과제였는데 혼자가 아니라서 든든했다.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 산다는 게 조금 긴장되면서도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에서 설레기도 했다.


직장 동료와 동거하는 것에는 의외로 좋은 점이 많았다. 룸메이트들이 나이, 성격, 출신지 등 다른 점은 많아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미국 회사가 그렇기도 하지만 항공사는 특히 입사 전에 지원자에 대해 까다롭게 신원 조회를 해서 신뢰할 수 있었다. 회사가 같이 살기에 부적합한 사람을 걸러 준 느낌이랄까. 좋은 사람도 많지만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새로 알게 되는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피곤함을 덜었다. 게다가 직업 특성상 집을 비울 때가 많은데, 한집에 네 명이 있으니 아무리 각자의 일정이 달라도 그중 한 명은 집에 머무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또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의 고충을 잘 이해했다. 알게 모르게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풀어 주어야 했다. 매운 음식이 당기기도 했고 몸을 움직이고 잠을 푹 자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였으나 무엇보다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 참 감사했다. 굳이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알아듣고 옆에서 울고 웃었다. 나중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더불어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는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럴 때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동료이자 벗인 동거인과 나누고 싶었다. 자연스레 미래에 만나게 될 짝꿍도 이처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시간이 흘러 베이스를 다른 곳으로 바꾸고 타주로 이사를 했어도 한 명의 룸메이트와는 헤어지지 않고 여전히 함께이다. 둘이 새로운 동네를 알아보는 것도 여행처럼 여겨졌고 하루 종일 침대, 식탁, 책꽂이 등 가구를 조립하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생각보다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동거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또 표현해도 부족하다. 같은 공간을 나눈다는 것에는 분명 불편한 점도 상당할 텐데 서로 언제 집에 오냐며 찾고, 돌아오면 반가워하고, 쉬는 날에는 같이 놀 수도 있는 사실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가족이 아니라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배려에서 일어남을 알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오지 않은 헤어짐이 벌써부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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