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한 번에 터진다 3
미국 스쿨버스는 학생들이 타거나 내릴 때 정지 표지판이 펼쳐진다. 이때 같은 방향은 물론 반대 방향 차선의 차량까지 모두 정지해야 한다. 또한 등하교 시간에 스쿨존 제한 속도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변 차들이 생생 달리다가 서행하면 시간대를 가늠하게 돼 곤 한다. 주마다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매우 엄격한 미국의 교통 법규!
정들었던 나의 첫 자동차와 이별 후 한동안 운전할 때 온 신경이 곤두섰다. 위험한 경험으로 안전운전을 배우는 건 이 정도면 충분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와 같은 문제들을 다시 해결할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의 교통사고는 안된다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럼에도 의지만으로 안 되는 나의 인생. 크리스마스 즈음 또 다른 사고를 선물 받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의 과실은 아니었다. 정지 표지판에서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충분히 멈춰 서 있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쿵이었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고 곧이어 차에서 내려 상태를 확인했다. 범퍼에 자국은 남았어도 크게 표시는 나지 않았다. 보험 처리를 해야 할지도 몰라서 우선 상대 운전자의 운전면허증과 보험증 정보를 받았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생년월일을 확인하니 10대 학생이었다. 사고를 일으킨 게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까웠다. 어린 나이에 나보다 운전 경력은 많겠지만, 그녀가 살면서 겪게 될 곤란한 일을 가능하면 천천히 마주했으면 했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몫하여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그쯤 되니 보험회사랑 계속 연락 취하면서 일 처리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사고 외에도 차를 타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 경찰에게 잡힌 사건도 같은 해에 세 번이나 있었다면 참으로 다사다난하지 않은가. 달라스에서 경찰들은 과속, 음주운전 등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경찰에게 잡혀 도로 한편에 차를 세워 둔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걸리지 않아도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경찰차 조명을 지나가면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첫 번째는 하필이면 심한 몸살이 걸려 상태가 안 좋은 날, 일을 마치고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파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백미러로 경찰차가 보였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뒤에서 따라오면 그 즉시 차를 세워야 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기억해 냈다. 퇴근길에 차가 많아서 차선 변경이 까다로운 구간이었는데 내가 위험하게 운전했단다. 설상가상으로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깜빡 잊고 나왔다. 운전면허증 미소지 때문에 이중으로 티켓을 받았다. 초보 운전이라고 봐줄 수 없냐며 사정했으나 소용없었다. 기준이 모호한 것 같아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법정에 가서 벌금을 낸 것도 모자라서 벌점이 생긴 바람에 그 기록을 없애고자 방어운전 교육까지 받았다. 차선을 바꿀 때 미국식으로 고개를 홱 돌려 주변 주행 차량을 이전보다 확실히 확인한다.
다음은 룸메이트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경찰차가 뒤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주었다.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그것도 티켓감이라 신경 썼는데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쩐지 운전하는데 앞이 어둡더라니, 수명이 다해서 조명이 꺼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았는데 친구가 나와 대화를 하다가 정지 표지판을 못 보고 뒤늦게 멈춰 섰다. 역시 잠복해 있던 경찰차한테 걸렸다. 두 경우 모두 감사하게도 경찰들이 실수를 눈감아 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싼 대가를 치른 덕분에 운전이 익숙해져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초보의 자세로 움직인다. 짧은 시간에 사건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서 서러웠으나 이를 계기로 늘 조심스럽게 다니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달라스에서 일련의 큰 사건들을 경험하고 후유증이 생겼다. 길 가다가 경찰차만 보면 지나치게 긴장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검은색의 비슷한 차량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타주나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왜 그렇게까지 놀라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 텍사스 경찰은 무섭다. 그 두려움 속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지켜야 하는 규율을 어기지 않게 되었다. 한국이었으면 대수로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나의 태도를 반성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