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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따 Aug 10. 2020

잊고 싶지만 무의식은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부모님의 부부 싸움을 자주 목격하곤 했었지만 그날은 평소 같지 않았다. 한집에 있던 할머니와 아버지는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아서 평소에 엄마와 친하게 지내시던 아주머니 댁에 급하게 달려갔다. 외가댁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필요할 용돈을 두고 집을 나간 것이었다.

어떻게 엄마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 우리를 두고 갔을까. 버려진 기분이었다. 며칠 못 가서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맞는 상황에 처했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어린 동생에게 가방을 챙기라고 했고 그 길로 울면서 집을 나왔다. 엄마를 찾아가야 했다. 방학숙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홀로 친척집 방문하기’를 했던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또 그 뒤로 아버지 없는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스무 살 이전까지는 아버지를 전혀 마주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부모님 사이의 갈등에는 늘 할머니가 끼어 있었기에 차라리 없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왔으나 보고 싶지 않다고 하고, 마주칠까 봐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온종일 갈 곳 없이 동네를 헤맸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전공수업이었다. 전체 동기들과 듣는 과목이었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여느 때처럼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친구가 밖에 누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강의실 밖을 쳐다보는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였다. 예고 없는 방문에 너무 당황해서 아무도 없는 바로 옆 강의실에 들어갔다. 아버지도 뒤따라 들어왔다.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고맙게도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괜찮은지 확인했다. 일단 친구들한테 보여 주기 싫은 모습이라 먼저 가라고 인사했다. 다들 가고 나면 나도 얼른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네가 아무개냐’고 묻고 내 손목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공포스러웠다. 시뻘겋게 충혈된 그의 눈은 괴물처럼 보였다. 마주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그는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이따위 학교나 다니냐고 했다. 이야기를 하고 만나는 조건으로 학비를 지원해 줄 모양으로 보였으나 나는 필요 없다고 하고 제발 놔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뿌리칠 수가 없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다른 한 손에 쥔 휴대폰으로 112를 눌렀다. 진짜 신고하는 사이 아버지의 힘이 살짝 풀린 틈을 타서 도망쳤다.

학교 캠퍼스 안에 숨어서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무사함을 알렸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지만 아버지가 또 나타날까 봐 겁이 나서 주변을 살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다. 눈물은 멈추지를 않고 다리는 힘이 풀려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실신할 지경이었다. 누가 도와줄 수 없으니 정신만 차려서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었던 적은 없었다. 시퍼렇게 된 손목은 며칠이 지나고 나았지만 가슴에 멍이 든 것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일을 겪었어도 어른들은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내가 쓸 데 없는 고집을 부린다며 나무랐다. 성장해서도 내 마음이 우선이 아니라는 점이 상처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도 성인이 되었으니 무엇이 무섭냐거나,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거나, 동생처럼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어리석게 산다거나. 그러나 누구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그들이, 동생이 나와 같은 사람도 아니고 내 인생을 살아 본 것이 아니니 나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동생은 나보다 어려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수준이 다르다. 누구의 아픔도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불안하다. 작은 자극에도 지나치게 놀란다. 예민하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자다가 반수면 상태에서 자신이 흐느껴 울고 있다는 걸 알 때가 있다. 혹은 꿈속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운 적도 있다. 저 밑바닥에 있는 슬픔을 다 토해 내듯이. 힘든 기억은 다 잊고 싶은데, 내 무의식은 기억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이 다양한 장면으로 떠오르고 나 자신은 무력하거나, 부모님이나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났거나. 이런 꿈들을 꾸고 나면 일어나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여 금방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작년에는 여전히 악몽을 꾸고 고통스러운 것에 너무 슬펐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는 걸까. ‘왜’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지만, 그만큼 속상했다.

휴직 중에 한국에서 <그 남자의 기억법>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같은 사람을 잃었는데, 한 사람은 그와 관련된 소중한 기억을 망각해 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과잉기억 증후군을 가지고 있어 망각하지 못한다. 괴로운 기억을 잊는 것이 안타까운 걸까, 잊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픈 걸까. 다 잊고 싶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온전히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쩌면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과거로 인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이 모든 기억과 함께 나를 안아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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