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재식당 by 안주인 Dec 03. 2017

우리만의 평양냉면 4대천왕

을밀대 / 필동면옥 / 우래옥 / 능라도

겨울이 왔다. 진정한 평양냉면의 계절.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것이 이 음식의 기원이라니 동치미 익어가는 계절에 ‘참맛’일테다. 이북음식의 상징인 '평양냉면'이 '미식'의 절대음식처럼 여겨지곤 한다. 맛 좀 안다는 치들이 아는체 하며 겨루듯 '3대 평양냉면'이니 '평양냉면 계보'니 하는 정보를 쏟아냈다.


물론 먹으러 다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부부에게도 평양냉면은 특별하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 사람들의 대표 맛집'으로 만났던 경험, 처음 대할 때와 달리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오묘함은 어떤 음식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니 엄청 먹으러 다녔다. 손에 꼽힌다는 집이면 거리를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몇 번이고 찾아간 집도 있고, 한 번 탐색한 데에 그친 곳도 있다. 그 간에 마음 속에 서열이 생겼다. '우열'의 문제라기 보다 '선호도'가 기준이다. 신랑도 나와 같이 딱 4군데를 꼽았다. 어떤 날은 이 곳의 맛이 땡기고, 다른 날은 저 곳이 맛이 땡긴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그 특색에 얽힌 우리만의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을밀대


나의 평양냉면 첫 입문지. '한 번 먹으면 무슨 맛인가 싶어도, 세 번째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숱하게 듣고 찾았다. 언니랑 호기롭게 주문한 냉면을 받아들고 '세상에 이렇게 닝닝한 맛이 있나' 까무러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쿰쿰한 향은 나는데 무슨 맛으로 한 그릇을 비워야할지 몰라 식초를 두르고, 겨자를 풀고, 양념장을 연거푸 넣어가며 먹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왜 닝닝하다고 느꼈었는지 의아하다. 이토록 감칠맛이 폭발하는데!


평양냉면의 맛을 완전히 깨우친 우리 부부는 '서울 여행' 온 친구들에게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곤 한다. 난생 처음 평양냉면을 대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첫 경험과 같은 행보를 예측했건만 착오였다. <을밀대>의 맛을 처음부터 완연히 즐기며 환호하는 몇을 겪었다. 그들은 '을밀대 먹으러 서울온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평양냉면 첫 입문자들에게 <을밀대>를 권한다. 모든 것이 균형적인 맛. 누구에게나 쉽게 맛있을 수 있는 맛이다.


강남을 비롯해 분당까지 분점이 몇 생겼다. 그렇지만 염리동 주민센터 부근에 본점을 찾아가 그 분위기까지 먹어야 참 맛이지. 주변에 정말 뭣도 없지만 이 포스 넘치는 '맛집'을 찾아 여름이면 골목길 가득 오직 <을밀대>를 에워싸고 줄서는 사람들의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시사철 한결 같은 살얼음 육수가 포인트입니다.
돼지기름으로 겉은 바삭하게 굽고, 속엔 돼지고기가 가득한 녹두전도 별미다.
비빔냉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치만 <을밀대>는 물냉면이 진리다.
파채 위에 수육.
수육과 함께했던 분당점의 냉면 한 그릇.







필동면옥


신랑의 평양냉면 입문지. 그는 이 곳에서 평양냉면을 만나고 깨우쳤다. 처음 상경해서 호기롭게 한 그릇 먹으며 차마 '맛있다'고는 못하고 '서울 사람들은 이런 맛을 맛있다고 하는구나'하던 그. 간이 센 부산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미식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 '고춧가루 하나 하나, 대파 하나 하나의 의미도 알겠다'고 말하며 정말 배가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일 정도로 육수와 면을 리필해가며 우겨넣고 감동에 겨워했다. 그 감동은 '이토록 맛있다'와 더불어 '평양냉면의 맛을 완전히 깨우쳤다'는 데에서 비롯되었겠지. 그 날이 뻔질나게 평양냉면을 먹으러다니던 날들의 시작일이었다.


<필동면옥>은 '육향'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공기 중에 그 꼬릿꼬릿함이 느껴질 정도다. 차가운 고깃국이라 할만한 육수에 고춧가루와 송송 썰어진 파가 올라간 것은 자연스러운 맛의 조화다. 고명으로 돼지고기 '제육' 한 점과 소고기 '수육'이 각각 올려지는 것이 특색이다.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시작되는 집들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참고 - [매경 프리미엄] '열 번 맛봐야 알 수 있다' 평양냉면 전문 필동면옥 http://premium.mk.co.kr/view.php?no=19260)


쫀득쫀득한 '제육'이 일품이라 곁들이로 시킬 수 밖에 없다. 어슷하게 썰어나온 돼지고기를 시원하게 담근 김치 한 조각 올려서 특제 양념에 겨자까지 살짝 올려 먹으면 끝내준다.

고춧가루&파, 수육&제육 고명이 시그니처.
필동하면 '제육'의 제왕입니다.






우래옥


평양냉면의 맛을 깨우치고 <우래옥>을 찾았다. 어쩐히 궁중음식처럼 고급진 담음새와 가게 분위기. 평양냉면을 우아하게 즐기고 싶다면 <우래옥>을 찾기를. 메밀 함량을 100%로 한 '순면'을 선택해 맛볼 수 있다.  '김치말이 냉면'과 '불고기' 또한 일품이다. 흠잡을 데 없고, 언제라도 찾고 싶은 맛. #수요미식회 평양냉면 편에서도 문 닫기 전에 가야할 식당으로 꼽았었다. (오직 흠이라면 고급진 가격)


배를 채썰어 올렸다.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더해진다.
고소한 참기름향이 끝내준다. 밥까지 말아져 나오는 '김치말이 냉면'
<우래옥> 불고기의 백미는 메밀 사리 말아먹기!






능라도


블로거들 사이에 난리가 났었다. 판교에 평양냉면 신흥강자가 나타났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아버지의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레시피로 궁극의 맛을 재현해 만들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더해졌다. (*참고 - [한겨레] 1세대 명가 아성에 도전장 내미는 냉면 맛집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43023.html)


궁금해서 찾아갔던 날, 들어서자마자 반기던 '능라방앗간'. 지금은 공간을 확장해 재편성하면서 없앤 것으로 알지만 참 뜻깊은 첫인상이었다. 공간 만큼이나 맛도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누적시키는 전통성을 대신하는 세련되고 진실한 노력이 느껴졌다. '가게를 하려면 이 정도 노력을 하자!'고 화이팅을 외쳤던 기억도 난다. 냉면도 냉면이지만 온반이며 만두도 인상적이다. 이 정도면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누구든 맛있다고 하지 않겠나. 어른들 모시고, 아이들 데리고 와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늘 둘이서 가느라 '어복쟁반'을 아직도 못 먹어 본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초기 <능라>이던 시절의 지금은 없어진, 방앗간.
<능라도>의 평양냉면은 깊고 깔끔하다.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온반'.







평양냉면과 함께,

<을밀대>는 빈대떡, <필동면옥>은 제육, <우래옥>은 김치말이국수, <능라도>는 온반과 함께해 보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포천, 미미향 | 인생 탕수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