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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Dec 25. 2017

크리스마스엔 홈스토랑

함박스테이크와 파스타

아기 예수 나신 기념일인 '크리스마스'가 석가모니 탄신일인 '부처님 오신날'과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한 해를 다 보내고 캐럴이 울려퍼지는 이 맘때, 사랑을 전하는 축제의 시즌이니 아주 모른척하진 않기로 한다.


연애하던 시절도 그랬지만, 결혼해서 사는 동안은 '파스타'를 비롯한 양식 음식을 돈주고 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분위기 값'이 포함된 한그릇 가격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우리집 주방장이 만든 것보다 맛이 없으니까. 그럼 우리집 주방장 솜씨 자랑 좀 해볼까.






함박스테이크


Hamburg(er) steak. 보통 줄여서 햄버그라고도 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일본식 발음인 함바구(ハンバーグ)가 와전되어 퍼진 탓에 '함박스테이크'라고 불리운단다. (*출처 - 나무위키)


그런데 어쩐지 '함박스테이크'라고 불러야 입안에서 함박눈처럼 부드럽게 으깨지는 느낌이나, 포크로 살짝 힘을 주어 누르면 으스러지면서 소스를 흠뻑 머금는 질감을 담아내는 것만 같다. 우리집 주방장은 정해진 레시피 없이 때마다 적당한 비율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열심히 치대어 만든다. 꼭 지키는 비법이라면 다진 양파와 당근을 오래 볶아 섞는다는 것이란다.


함박 스테이크 하는 날이면 필연적으로 동글동글한 반죽 여러개를 만들어 냉동실에 저장하게 되는데 굉장히 부자된 기분이 든다. 아마도 밖에서 함박스테이크 두접시 먹는 값에 열개, 어쩌면 그 이상의 저장 음식이 탄생하니 경양식 외식값이 아깝게 여겨질 수 밖에.

크리스마스틱한 담음새. 냉동실에 잠들었던 그린빈을 볶아 내고, 브로콜리를 살짝 데쳐 올렸다. 서양 고추냉이라고 불리우는 홀스래디쉬 소스로 하얀색을 더하고, 토마토 케첩으로 빨강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비쥬얼 뿐만 아니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한 입 베어물면 터져 나오는 육즙이 정말 갖다 팔고 싶어지는 맛. (언젠가는!)






감바스 알 아히요


언젠가 <오늘뭐먹지>에서 이 귀여운 요리가 방영되었다. 스페인어로 감바스(gambas)는 새우를, 아히요(ajillo)는 마늘을 뜻한다지.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 만드는 새우요리에 나비모양 숏 파스타 '파르팔레(Farfalle)'를 더해 만들었던 만찬. 방울 토마토랑 파슬리 가루가 살포시 얹어지니, 이 역시 크리스마스 요리로 손색 없었다.

하도 양이 많아, 조금 남겼다가 다음날 데워 먹었을 때 새우 기름을 흠뻑 머금은 파스타가 한결 더 맛있어져 깜짝 놀랐던 기억. '감바스 알 아히요'를 아신다면 새우만 건져 먹지 말고, 오일에 파스타를 담궈 먹어요.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겨울이면 남해에 계신 엄마가 '섬초'를 잔뜩 보내주신다. 길이가 짧고, 뿌리가 붉은 시금치의 한 종으로 유난히 달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도착한 시금치. '바질 페스토'가 일반적이지만 올리브유, 잣, 소금, 후추만 있으면 무엇이든 페스토가 될 수 있다. 그 자체로 맛있는 시금치를 주인공 삼으면 맛이 없기 힘들지. (이것도 갖다 팔까 싶다.)

맛있는 페스토만 있으면, 파스타 만들기가 짜파게티처럼 쉬워진다. 적당히 삶은 면을 시금치 페스토에 잔뜩 버무려 그릇에 담고 치즈 가루와 후추를 솔솔 뿌리면 완성. 연말을 대비해 야심차게 준비해 두었던 빨강색 땡땡이 냅킨을 꺼내어 깔았더니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난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홈레스토랑이 뭐 별건가. 빨강색과 초록색을 조화로우면 완성.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집을 나누어 쓰듯, 언젠가 'Share Dinner'를 마련하는 꿈을 꾼다. 근사한 한 끼를 나누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


아직은 우리집 작은 부엌에서 터를 마련하기 마땅찮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이루고픈 꿈을 품고 사는 건 설레이는 일이니까. 언젠가 누구에겐가 열릴, 우리의 '홈' 아니면 '진짜' 레스토랑을 기대해 보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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