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가브리살 구이와 곁들이 채소들
집을, 이름을, 글을, 농사를, 밥을 짓는다고 한다. 단순히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할 때엔 고심한 시간을 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한숨과 미소도 짓는다고 말한다.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쓰이는 것이다.
그러니 밥을 짓는다는 것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 해도 될 것이다. <삼시세끼>로 대표되는 밥 짓고 차려 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뚝딱 완성되고, 뚝딱 배달오는 음식이 갈수록 익숙해지니 공들여 차리는 한 끼 밥상이 점점 귀해진 까닭일테다.
결혼식날, 친정 아빠로부터 "밥 함께 먹자."라는 가훈을 받았다. '식구(食口)'라는 의미 그대로, 한 집에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었다. 이를 주제로 은사님이 지역 신문에 칼럼을 기고해 주시기도 하였다.
부산일보 - 인문산책 | 세 개의 단어 '밥', '함께', '먹자' / 김수우 시인·백년어서원 대표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0826000037
신랑은 결국 요리를 할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첫 부엌이 될 우리 신혼집의 부엌 살림만큼은 잘 꾸려주고 싶었다. 오래된 아파트를 셀프 인테리어로 갈고 닦아 신혼집을 차렸는데, 부엌은 작은 우리집의 얼굴이고, 거실이자 손님 맞이 살롱으로 거듭났다.
우리보다 앞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키친>에서 선언했었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라고. 우리집 작은 부엌에서 차렸던 음식의 기록. 그것은 곧 우리가 보낸 신혼 생활의 가장 좋았던 순간들, 단꿈으로 남겨질 것이다.
우리집 밥상의 남다른 점이 있다. 계절 바뀔 때마다, 참기름 떨어질 때마다,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택배의 식재료다. 시댁 어른들이 밀양으로 귀농하셨는데, 텃밭에서 별별 것이 다 자란다. 직접 키운 작물 뿐 아니라 홍삼에 흑마늘까지 직접 찌고 말려서 보내는 어머니 정성은 정말 못당한다. 우리 친정엄마는 "느그 시어머니 같은 사람 없다. 네 복이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택배를 받은 날이면, 신이나서 펼쳐보고 냉장고 정리를 하는 우리 부부. 부자된 기분으로 "어머니, 이번에도 완전 산타 택배가 왔네요!" 목소리 톤을 한껏 올리고 전화드린다.
잠깐, '가브리살'에 대해 알고갈까요.
돼지목심과 등심을 연결하는 부위로 '등겹살'이라고도 하며, 돼지 한마리에 사람 손바닥만한 크기로 약 200g씩만 나는 부위라고 해요. 항정살, 갈매기살과 더불어 구워먹기 좋은 특수부위로 불리우지요.
저희는 연애 첫 겨울에 같이 구워먹었는데, 그 때 절에 수양하러 갔던 신랑(실화입니다..)을 만나러 갔다가 고기 구워먹고 돌아왔더니 절에서 '가브리(가버린) 그녀' 시를 지었더라지요.
후딱 차려 먹고 다니기 바쁘니, 예쁘게 사진 찍기 마땅찮을 때도 있지만 우리집 작은 부엌에서 그의 꿈도 실력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는 열심히 응원하며, 성장일기처럼 기록해 나아가야지. 육아일기 아니고 성장일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