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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May 22. 2018

오월의 신부로부터

'비포선셋'부터 '포토테이블'까지

우리는 2015년 5월, 2006년 8월부터 시작한 연애의 종지부를 찍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햇수로 10년을 채우고 결혼에 골인하는 장수 커플이라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연애 뒤에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결혼 준비, 역할 분담


본격 결혼 준비를 하며 어떤 집에 살고 싶고, 어떤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그 시기의 질문과 답들이었다. 신랑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별로 없었다. (아마 안치뤄도 그 뿐이라고 생각했을 사람이다.) 대신 서울살이의 각박한 자취생활을 끝나고 처음으로 '방'이 아닌 '집'을 갖게 되는 이로서의 소망은 충만했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했다. 나는 결혼식의 전반을 준비하고, 신랑은 집을 가꾸기로. 서로의 준비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호스트'와 '게스트'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결혼 준비하며 싸운 기억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드레스 투어를 다닐 때 비즈가 번쩍거리고 살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커텐을 걷으며 등장한 나를 보고 놀란 신랑이 귀엣말로 "드레스보다 아까 입고 온 옷이 더 예뻐."를 달콤한 대사라고 뱉은 것이 화근이 되어 오지게 싸운 것이 유일하다.)


집을 준비하는 신랑은 방 하나를 통째로 나를 위해 '책'과 '옷'만 가득하게 설계했다. 언젠가 음식 만드는 사람으로 살 것이 분명했기에 가장 힘을 준 공간은 부엌이었다. 가구며 전자제품을 구비할 때, 하루에 8시간 이상씩 보내며 결국 인생의 1/3이 지나가는 침대 매트리스에는 가격보다 감을 중시하여 골랐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나는 세상에 '우리'를 선언하는 언약식을 '우리답게' 표현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우리'를 선명히 정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못 할' 표현 방식에 골몰했다.





웨딩사진, 비포 시리즈 오마주


배경과 포즈를 정해두고 프로페셔널하게 찍는 스튜디오 촬영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그 즈음의 나는 온갖 커플 사진 레퍼런스 수집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남들처럼 스튜디오 촬영하지 않으려 했는데 마냥 남들 사진 따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우리답게'에 집중.


촬영장소는 참 좋았던 데이트 장소 중 하나로 정했다. 당시 아이폰으로 찍었던 사진이 우리의 레퍼런스였다. 컨셉이나 포즈는 '기념' 사진 말고, 이야기에서 취하고 싶었다. 별 고민하지 않고 <비포 시리즈>를 떠올렸다. 이 영화 3부작은 누가 뭐래도 나의 #인생영화. 연애 시절, <비포 선셋>을 제일 먼저 신랑에게 보여줬는데 내내 '제시'를 따라하며 감명받아 했다. 그 때 부터 때때로 나는 그를 '나의 제시'라고 부른다.


촬영 전에, 좋아하는 몇 장면을 짚어 작가님께 보여드렸다. 작가님은 OST를 들으며 촬영지 답사를 하셨다 했다. 그래서 따라한 것 같은 장면이 아니고, 우리만의 형태로 소화 된 (그러니까 재창조 된) 사진들이 남았다.


비포 시리즈는 내내 이렇게 제시와 셀린이 이야기 나누며 걸어다닌다.
<비포 선셋>에 세느강 굴다리가 등장했었지!
제시와 셀린이 마주보던 장면들의 오마주






소품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끄적거린 낙서에서 시작해 준비했다. 챙긴 것도 있고, 비슷하게 취한 것도 있고, 못 챙긴 것도 있다. 이 역시 의도된 계획과 우연의 순간들이 조합되어 우리만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무척 우리답게.

소품 고르러 다니던 때, '땡땡이'와 '줄무늬', 그리고 '코끼리'를 지나치지 못해 잔뜩 샀던 카드들.



빨강 플랫과 슈퍼스타의 만남. 마침 바랑이 팔랑 불어서 치마가 방긋해 주었지요.



꽃잔디가 만들어 준, #인생샷


아이스크림 대신, 아이스크림 비눗방울을 준비해 이런 장면이 남았다.






뿌리가 잘린 꽃 대신, 알록달록 과일과 채소로


처음부터 '야외식'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 레스토랑을 1년여 전에 계약했고, 우리가 결혼식을 치를 즈음에 루프탑 야외식이 가능해졌다. 내가 알기로 우리 예식이 레스토랑 사장님 내외분의 결혼식 이후, 고객이 치른 첫 루프탑 야외 웨딩이다. 그저 공장처럼 찍어내듯 시간대 맞춰 결혼하는 예식장 문화가 싫어서 찾은 대안의 장소였다. 그게 또 운이 좋았다.


꽃 스타일링 실장님께 "뿌리가 잘린 꽃 대신,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로 꾸며주세요."를 청했다. 때 맞춰 내 책을 낼 수 있다면 출간 기념회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시기상조에 역부족이었기에 '예쁜 책'을 소품을 가지고 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분위기를 냈다. 드레스를 입고 도착한 결혼식장은 그 자체로 내게 거대한 선물이었다.


바나나, 오렌지, 대파, 당근, 가지에 비트, 브로콜리까지 놓여진 포토테이블.



두 '아빠'의 축하 인사가 남겨졌고, 소품은 하객들 귀가길에 보내드렸다.


결혼 준비하며 수 없이 수집한 레퍼런스를 훑으며 꼭 하고 싶었던 '웰컴보드'. 우리의 청첩장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나는 신부대기실로 마련된 곳에 '대기'하지 않고 내내 이 앞에 서서 손님 '맞이'를 했다.


이렇게 결혼식을 치뤘다. 작고 소박한 결혼식이 되길 소망했지만 넘치게 풍요롭고 따뜻한 결혼식이었다. "밥 함께 먹자"라는 우리집 가훈은 친정 아빠의 결혼식 축사로부터 비롯되었다. 공간을 정하고나니 식사는 부페로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결혼식장에서 곰탕 끓이고 바베큐 구워 손님 대접하고 싶다던 신랑의 바램을 실현해 주지 못한 것이 유일하게 남은 아쉬움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인륜지대사라 누구에게나 인생의 장을 넘기는 일이지만 '우리답게' 해냈던 이 시간을 보냄으로써 나는 자각했다. 무형의 에너지를 그러모으면 나는 시너지가 어떤 것인지. 몸을 가진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시간을 만드는 것에 내가 무한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도. 날씨가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연중 가장 반짝이는 날, 오월의 셋째주 토요일이 되면 남겨진 기록을 꺼내어 들여다 본다. 그럼 나를 나답게,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이야기와 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결혼을 잔치로 치르고나니 남은 우리의 이정표이다.




**BGM List
- 식전 | 연애(김현철) /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승환) / 영원히 둘이서(박진영) / kiss (조규찬&해이) / 남과여(박선주&김범수) U&I (Toy) / if you love me (제이래빗) / 아로하 (쿨)


- 신랑입장 | 윤종신 - 환생

- 신부입장 | 박정현- 다신없겠죠
- 부모님인사 | 박효신 - 1991년, 찬바람이 불던 날

- 행진 | Queen- I was born to love you




그리고 정말 감사한 우리 스텝분들. 무한한 애정을 받았다. 소품으로 썼던 카드를 적고,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고른 책들을 드리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예식이 끝나도 오래오래 뵈며 애정을 나눌 줄 알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행복하게 잘 지내는 안부로 감사 인사를 대신한다. 언젠가 맛있는 밥 한끼 꼭 대접할 수 있기를! 이렇게 두고두고 꺼내어 볼 반짝이는 날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to

flower & styling / 퀴너스타일링 Queena Styling

wedding director / 유어빅데이 Your Big Day

makeup & hair / 본어게인미 born again me

photo / 베로니카클로쓰 veronica cl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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