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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Oct 08. 2017

서울 종로구 | 환기미술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물이 무엇인가요?

나는 서울여행자다. 이제 서울에 올라와 살게된 지 10여년이 되었지만, '서울에 산다'는 문장의 주어를 나로 두고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오히려 서울 토박이들은 집, 학교, 집, 학교로 순환되는 동네 동선 속에 살더만. 여행자로 사는 나는 한강을 가운데에 둔 커다란 이 도시를 여전히 탐험지로 생각하고 누빈다. 10여년차 서울 여행자로서 이 도시를 위한 한 권의 책을 추천하자면, 오기사의 <그래도 서울이 좋다>를 꼽겠다.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물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그에 담긴 건축가의 서울에 대한 애정을 내 것인양 여기며 시시때때로 반복해 읽었다. 특히, 한강의 다리들에 관한 이야기와 236p.에 별안간 등장한 chapter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물이 무엇인가요?'에 대한 종국적인 답을 좋아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곤란함을 무려 한페이지 넘게 설명한 후, 비로소 답이 나오므로 종국적이라는 수식을 붙인다.)

현대 건축물 중에서는 환기미술관을 제일 좋아합니다.

나는 형태적으로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공간적인 감동을 느끼게 하는 건물들을 좋아한다. 대개 땅에 순응하며 매력적으로 배치되었거나 실내로 유입되는 빛의 연출을 잘했거나 하는 경우다.

환기미술관은 항상 작은 산사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 무엇보다도 건축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땅과의 관계를 건축가가 잘 풀어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나에게 환기미술관은 마치 여행에서의 프랑스 파리 같은 곳이다. 물론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파리를 좋아하는 곳으로 선택한다고 해서 큰 흉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진부한 모답안은 적어도 큰 논란을 만들지는 않는다.




초판이 2012년 5월에 나온 책을 읽고 그 해 가을, 환기미술관을 처음 찾았다. 그에겐 진부한 모범답안일지 몰라도 감동벽이 있고 건축에 문외한인 내게 그 공간이 주는 감동이란 대단했다.


벽면 기둥이 액자를 이루어 공간 그 자체가 작품처럼 보이도록 한 구조. 작은 창으로 드는 한 줌의 볕이 빛으로 전환되는 조명의 효과. 그리고 발긋한 담쟁이. 첫 방문이 하필이면 가을이었다. 담쟁이가 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초록에서 빨강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물들어가는 계절.

2012년 가을, 환기미술관
그려 넣은 것 같은 벽면의 담쟁이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같군, 생각했던 사진. 그 영화도 역시 2012년작이다.




그리고, 환기와 향안.


환기와 향안의 존재를 알면 알수록 이 공간을 더욱 애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공간을 다녀와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와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를 읽어보시길. 언젠가 허구를 덧대어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쓴다면 그들을 주인공으로 두고 쓰고 싶었다. 지금 마음에는 '감히'하고 물음표가 달려있지만


향안. 환기를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여인. 날 적부터의 이름은 '변동림'. 천재 시인이라 기록되며 <권태>라는 한국 문학사의 획을 긋는 작품을 남긴 '이상'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이 환기와 연이 되어 살 때에 가족의 반대로 본래의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환기의 아명이었던 '김향안'이 되어 살아가길 선택했단다. 환기의 미술 세계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그 자신이 먼저 불어도 배우고, 외국살이를 하는 것에 서슴없이 앞장섰다고 한다. 아, 다시 들어도 너무 멋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환기가 먼저 떠나고 그를 기리며 환기미술관을 세우고 꾸린 것도 향안이다. 미술관의 온도를 사람에 맞추면 그림이 상하고, 그림에 맞추자니 관람객에게 실례가 되어 곤란하다고 할 때, 그림도 제 운명이 있으니 사람을 우선하라고 했다던 향안.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환기는 어떠냐면, 그림을 보아야 한다. 달처럼 하얗고 둥근 백자들, 아득히 멀어지는 점 점 점, 공간을 압도하여 물결치게 하는 푸른 색. 그 액자 앞에 서 보아야 환기와 함께 불리워지는 그 시대의 화가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와 같은 이름들을 마주할 때마다 감동할 것이다. 그 이름들을 앞세워 나는 19세기말 - 20세기 시대의 예술을 좇아 '취향'이라 말하게 되었다.


2013년, 100주년 기념전 방문 때.





서울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환기미술관과 함께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거쳐 서울미술관(전시 큐레이션이 정말 훌륭하다. 미술관 뒷뜰로 이어지는 석파정은 서울이 가진 가장 값진 예술 공간이라 불리워야 마땅하고.)까지 이어지는 부암동 언덕길은 서울 여행자로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건축가 오기사는 건축물로 환기미술관을 꼽았지만, 나는 공간으로서의 그 곳을 사랑한다.


여름의 담쟁이는 이러합니다.


이렇게 기록을 꺼내어보니 다시, 무척이나 그립다. 조만간 발길 닿도록 해보아야겠다.






사진은 2012년 iPhone4로 찍은 것들이에요.

처음 찾아간 그 날이지요. 부러 필름카메라 감성도 유행하는 시대에 화질 떨어지는게 대수인가요.


번외 사진으로 윤동주 시인의 언덕. 환기미술관을 돌아 모퉁이에 있는 '카페 에스프레소'에서 커피 한 잔 들고 언덕을 올라보세요. 성곽길에 기대어 서울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세상을 다 가진듯한 평화로움을 만끽하실거에요. (커피대신 맥주라면 더 좋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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