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Day 11. 벨로라도 (Belorado) → 부르고스(Burgos) / 50.2킬로 / 40분 / 버스이용
오늘은 버스를 타고 넘어가 대도시 부르고스(Burgos)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순례길 11일 차,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에서 시작된 염증은 오른쪽 발목까지 번져 양다리를 번갈아 절뚝이며 걸었습니다. 그래도 20킬로 정도는 거뜬했는데 길에 나선 지 몇 분 되지 않아 시큰하게 아파옵니다. 그래도 오늘만 버텨보자 하고 또 걸었습니다.
누가 묻더군요.
"빨리 걷는 편이지? 그렇게 걸으면 안 돼. 긴 여정이니까 길게 봐야지.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아야 해. 그래야 아프지 않고 오래 걸을 수 있어."
42년을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하시고 20년 넘게 트레킹을 해오신 분의 말이니 꽤 믿을만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십니다.
"쉬어가면서 살아야 해. 나는 그러질 못했어."
희한하게도 여기 와서 만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모든 분들이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먼저 살아내어 뒤를 돌아보고 현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 분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가 이런 것일까요. 우리는 너무 바쁩니다. 뭘 위해서 바쁜지 모르는 날도 많습니다. 꼭 무언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초조함과 불안이 2, 30대를 잠식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남은 긴 여정을 위해 대도시에서 좋은 것도 먹고, 약국에서 바르는 파스와 테이핑도 삽니다. 부르고스 대성당 앞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도 하고, 글도 쓸 겁니다. 밀린 세탁도 하고 한인마트에서 라면도 사야해요. 그리고 여기에서 발견한 정말 맛있는 초코푸딩도 먹을 거예요. 2개에 2유로도 되지 않는 답니다. 부르고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도 올라갈 거예요.
그리고 다시금 다짐합니다. 누군가를 쫓아 앞지르거나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길을 걷는 것과 많이 닮아있는 삶의 여정은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는 것이라고.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다울 수 있고 타인과 어우러질 수 있으며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