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Day 10. 산토도밍고데칼사다(Santo Domingo de Calzada) → 벨로라도 (Belorado) / 22.2킬로 / 6시간 39분
오늘의 낭만은 첫 마을 그라뇬(Grañón)에서 만난 야외푸드트럭. 아침햇살이 비추는 테이블에서 갓 구운 토스트와 갓 짜낸 생 오렌지 주스는 반칙 아닌가요. 순례길 최고의 조식이라 인정!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원하는 음식 1가지와 오렌지 주스, 커피까지 단 4유로. 뜨겁고 진한 커피 향과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은 하루종일 해바라기 밭 사이를 걸었다. 알고 보니 스페인이 해바라기로 유명하다고. 조금 더 이른 여름에는 활짝 핀 해바라기 밭을 지날 수 있다는데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는 시기상 수확이 끝난 해바라기를 물리도록 보면서 걷는데 누가 해바라기 얼굴에 예술을 만들어두었다. 걷는 방향을 향해 화살표 표식을 만든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Gracias!
30도에 육박하는 땡볕을 견디고 걸어와서 만나는 수영장이 딸린 숙소란 꿀맛 같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뛰어들고 다리를 담그고 있자니 천국이 여긴가 싶다. 레드와인과 콜라까지 곁들여 담요를 깔고 썬베드에 누워 바람과 햇빛을 즐겼다. 길을 걷고 나서 쉬는 타이밍은 정말 행복하다. 걱정할게 아무것도 없는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스페인은 태양이 작렬하는 나라라 더위를 이기기 위한 신기한 음료가 꽤 많다. 우리가 잘 아는 탄산음료 콜라나 환타도 있지만 와인으로 만든 특이한 음료가 몇 가지 있다. 그중 1일 1잔을 실천하고 있는 ‘깔리모초’. 레드와인과 콜라를 1:1로 섞은 음료다. 가게에서 주문하면 얼음을 넣고 레드와인 반을 따른 후, 병으로 된 코카콜라를 함께 주는데 너무 맛있다. 술과 당이 반반이라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고 나면 무조건 주문하는 메뉴가 됐다.
오늘은 숙소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을 때 나온 병와인을 들고 와서 콜라를 따로 샀다. 직접 만들어 마시면 더 싸게, 더 많이 마실 수 있으니까. 오늘은 깔리모초 행복을 원하는 만큼 누리겠다는 굳은 의지. 게다가 수영장 선베드에서 마시면 너무 행복하잖아. 깔리모초 만드는 방법은 아주 쉽고 어떤 레드와인이라도 되니까 읽으시는 여러분도 꼭 한번 도전해 보세요. 한국에 돌아가서도 종종 해마셔야지 생각하며 남은 시간을 정원에서 마음껏 누렸다. 이제 또 내일의 길을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