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주부습진이 다시 도졌다. 요즘 딸아이가 학교를 안 가니 내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설거지야 고무장갑을 낀다지만 음식 준비에는 비닐장갑이나 실리콘 장갑을 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일회용 비닐장갑 사용으로 환경 쓰레기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쯤 엄마들의 개학을 접고 방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주부습진이 대상포진을 데려올까 은근히 겁내고 있는 요즘이다.
하루에도 5번의 식사(식구들의 기상시간이 저마다이다)와 사이사이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나는 반조리 식품이나 냉동식품에 너무 감사한다. 평상시에는 굳이 사지 않았던 음식들인데 이제는 냉장고 곳곳에 쟁여놔야 마음이 편한다.
그래서 한 번 일주일의 식단을 대략 정리해 보고 간단한 레시피를 써 보려 한다. 여기에는 각종 TV에 나왔던 레시피들과 인스턴스 음식도 있으니 맛은 보장한다. 그리고 나는 무조건 간단히, 쉽게 하는 스타일이라 디테일이 떨어질 수 있다.
월요일 : 비비고 미역국 / 수제비 / 냉동삼겹살
화요일 : 길거리 토스트 / 아보카도 밥 / 콩국수 (콩물은 시판용)
수요일 : 시리얼과 요구르트 / 유부초밥 / 삼계탕
목요일 : 닭죽 / 짜파구리 / 된장찌개
금요일 : 냉동 크로와상 / 김치볶음밥 / 쌍화탕 보쌈
토요일 : 김치 떡만둣국(아점) / 배달음식
일요일 : 라면에 밥 / 외식 / 김밥과 떡볶이
월요일 : 아침부터 괜히 피곤하다. 평상시면 주말 내내 지지고 볶다가 드디어 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하는 월요일이 여유로운 하루인데, 이제는 그저 반복되는 하루일 뿐이다.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무언가를 만들기는 싫다. 비비고 미역국을 뎁혀 간단한 밑반찬으로 차린다. 다 치우고 나면 수제비 반죽을 해 놓는다. 나는 찰 밀가루를 쓴다. 거기에 감자전분 조금, 소금, 올리브유 조금 넣어서 조금은 질게 반죽을 한다. 그 반죽을 냉장고에 넣는다. 몇 시간이 지난 점심때는 그 반죽이 더 폭신폭신 밀도가 높은 덩어리로 되어 있다. 멸치 다싯물(청정원 멸치국물내기 티백)에 반죽을 내 맘대로 넙적하게 떠 보자. 내가 먹는데 종잇장처럼 얇게 뜨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저녁에는 냉동실에 네모나게 썰어서 냉동되어 나온 삼겹살을 구워준다. 냉동이래도 야들야들하고 생각보다 맛있어서 냉동실에 쟁여놓고 아무 때나 먹으면 편하다.
화요일 : 길거리 토스트는 간단하지만 맛은 정말 맛나다. 먼저 계란 푼 다음 양배추를 썰어 넣는다. 소금, 후주 조금 넣고. 양배추 있는 계란을프라이하는 것처럼 식빵 크기로 부쳐 낸다. 참고로 계란 한 개가 한 사람 몫이다. 식빵은 꼭 버터로 굽는다. 이제 끝이다. 식빵 한쪽 위에 설탕(맛나게 한번 먹으려면 듬뿍 뿌려보자)을 솔솔 뿌리고 계란 부침을 올린다. 여기에 우리 딸은 양파를 좋아해서 양파를 넣지만 안 넣어도 상관없다. 계란 위에 케첩을 왔다 갔다 듬뿍 뿌려서 나머지 식빵을 덮는다. 이등분이나 대각선 4등분으로 잘라 놓으면 너무 익숙한, 누구나 아는 그 길러리 토스트 맛이다.
아보카도 밥은 TV에서 에릭씨가 만든 메뉴다. 밥 위에 잘 익은 아보카도( 아직 덜 익었다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만들자), 날치알 (명란젓도 OK), 조미김, 양파(물에 담갔다 써야 아린 맛 제거), 계란 프라이를 놓는다. 소스는 간장에 와사비 풀면 된다.
수요일 : 삼계탕은 생각보다 너무 쉽다. 닭을 깨끗이 씻고 날개 끝 부분을 가위로 자른다. 엉덩이에 달리 세모난 지방 덩어리랑 근처 두꺼운 지방 껍질도 가위로 오려낸다. 그 안에 밥을 넣는다. 이상하게 나는 몇 시간을 불린 찹쌀을 넣어도 늘 그 찹쌀이 안 익는다. 결국 그 찹쌀을 국물에 꺼내어 다시 끓여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싫어 닭 몸통에 밥 솥에 있는 찬밥을 넣는다. 귀찮으니깐. 이쑤시개 여러개로 대강 구멍을 막고 이제 모든 걸 다 넣을 때다.
큰 냄비에 밥 채운 닭과 삼계탕 부재료(마트에 판다)를 넣고, 집에 있는 인삼, 대추, 통마늘 등등 다 넣는 거다.
나는 집에 우엉 연근차가 있어서 그것도 넣었다. 그냥 내 마음이다. 이번에는 삼계탕 부재료를 못 사고 어머님이 주신 인삼이 냉동실에 있어 그 인삼과 대추, 마늘을 왕창 넣었는데도 맛있었다. 음식은 그냥 해 보는 거다.
그렇게 강한 불 20분, 중간 불 20분 끓여서 닭다리 밑에 뼈가 보이게 벗겨졌다면 OK!. 여기서 중요한 뽀인트. 소스!! 종지에 닭국물 조금 넣고 진간장, 식초, 연겨자를 넣는다. 이 소스만 있으면 내가 싫어하는 퍽퍽 가슴살도 다 먹을 수 있다.
목요일 : 아침은 어제 먹었던 삼계탕의 진국, 닭죽으로 해결한다. 된장찌개에는 시판 양념이 필요한다. 나는 다담에서 나오는 강된장과 냉이된장 세 개씩 묶어 있는 상품을 사서 타파에 두 종류를 아예 섞어 놓는다. 물에다 이 섞어 놓은 된장 소스를 짜지 않을까 할 만큼 넣는다. 작은 냄비에 6-7스푼 정도. 우리 집 된장이 끝내 준다 싶으면 집 된장도 조금 넣는다. 호박, 대파, 두부를 잔뜩 썰어서 된장 국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모든 야채 투하. 대파는 많아도 좋다. 여기서 나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여러개를 얇게 썰어 마지막에 넣는다. 시어머니께서 고기 대신 넣어보자 하셨는데 맛이 일품이다. 고춧가루를 조금 넣던, 버섯이나 양파 등등 냉장고에 있는 야채는 아무거나 좋다. 생각보다 인스턴트 된장 맛이 아니라고 이건 감칠맛이라고 세뇌시키며 먹어보자. 끝내준다.
금요일 : 쌍화탕 보쌈은 예전에 마리텔에서 오세득 셰프가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음식은 너무나 간편하지만 결과물은 손님을 치러도 될 만큼 비주얼이나 맛이 탑이다. 우선 돼지고기를 보쌈용으로 준비한다. 삼겹살, 목살, 앞다리살 다 좋다. 덩어리면 된다. 점심을 먹고 고기를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잘라 비닐에 넣는다. 양파, 대파를 듬뿍 썰어 그 비닐에 넣고 후추도 뿌려준 다음 냉장고에 넣어 놓자. 저녁 먹기 4.50분 전에 비닐 속 재료를 냄비에 넣는다. 양파와 대파 덕분에 돼지 누린내는 날아갔을 것이다. 이제 약국에서 산 500원짜리 쌍화탕 한 병을 넣는다. 그 병에 간장을 반을 채운다( 나는 반이 짜서 3분의 1 정도 넣는다). 미림도 한 병(나는 미림반, 물 반)을 채운 다음 냄비에 쏟는다. 쌍화탕병이 계량기인 셈이다. 이제 끝이다. 끓이기만 하면 된다. 센 불에 20분, 중불이나 약불에 20분. 먹을 때는 보쌈처럼 썰어놓고 위에 양파, 대파 푹 익어 까매진 야채도 다 같이 올린다. 만약 손님을 초대했다면 양식 접시에다 한 덩어리씩 놓고 버섯이나 야채 가니쉬를 같이 담으면 근사한 양식 한 상이 된다.
토요일 : 이날은 다 같이 늦잠을 잔다. 아이 학원도 없다. 아점으로 멸치 맛국물에 떡국떡과 비비고 얆은피 김치만두를 넣어 계란을 푼 다음 대파를 숭덩숭덩. 토요일은 나도 지쳤다. 저녁에는 배달음식이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코로나 사태를 버텨주게 해 준 배달음식!
일요일 : 일요일 아침은 라면이지.. 사람마다 라면의 레시피가 분명 있다. 누구는 봉지에 쓰여있은 대로가 가장 맛있다 하고, 누구는 카레 가루를 조금 넣어라, 누구는 된장을 넣어라, 누구는 간 마늘을 넣어라 등등
나는 끓는 물에 스프와 라면을 넣고 라면의 면이 젓가락으로 풀리면 한번 센 불에 확 끓인 다음 계란 넣고 뚜껑을 닫고 불을 과감하게 꺼 버린다. 면발이 아직 딱딱할 때다. 이 비법은 TV에서 대박 라면집 사장님이 알려준 비법이다. 불을 끌 때는 불안감에 더 끓여 보기도 했지만 용기 내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자. 식탁에 냄비를 옮기고 김치과 찬밥을 떠 놓고 4-5분 기다린다. 이렇게 끓이면 면발이 다 먹을 때까지 불지 않아 좋다. 면발의 탱글함 때문에 나는 늘 이렇게 4,5분의 기다림들 즐긴다. 4,5분에는 1분의 차이가 있다. 사람마다 면발 익히는 취향이 다르니 각자 나만의 분침을 찾아보자.
이렇게 일주일을 적어 놓으니 하루 종일 밥만 하는 사람같으네. 이 시간이 언제나 끝날 런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먹거리를 배달해 주는 업체가 있고, 가족이 무탈하게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한다. 손에 주부습진은 번졌지만 내 몸에 어떠한 나쁜 바이러스도 못 들어오게 밥이라도 꼭 잘 챙겨 먹고 다시 일상이 오는 날 폭발하듯 자유를 누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