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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Nov 22. 2020

김장날의 하루

오늘 김치 참 맛있다.

드디어 김장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날이 왔다.

내년 일 년의 밥상을 책임 질 김장의 김치는 우리 집에선 너무나도 중요하다.

김치를 365일 먹어도 안 질려하는 나와, 나를 닮은 딸에게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김치의 탄생에는 여러 사람의 수고스러움과 버거움도 버무려진다.

김장준비는 사실 김장날보다 힘들 것이다.

맛난 젓갈들의 득템을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가기도 한다.

마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양을 까서 다져 놔야 하고, 찹쌀풀과 다싯물도 한 솥 끓여 식혀놔야 한다.

채소들도, 고츳가루도, 김장 당일 새벽에 생새우와 굴을 사러 수산시장도 가야 한다.


이 김장 전 준비 과정은 우리 두 며느리는 패스다.

어머님은 늘 이야기하신다.

" 내가 김치 하나라도 같이 만들어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게 자그만 보람이다. 이것 또한 몇 해나 할랑가? "

이런 마음으로 어머니는 즐겁게 김장 준비를 혼자  틈틈이 하신다. 마음은 그러하나 아마 몸은 너무 힘드실 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절인 배추가 제주도 돌담처럼 빈틈없이 아주 정돈스럽게 차곡히 쌓여 있었다.

20kg짜리 7박스란다....

오늘의 마라톤 경주는 시작됐다!


1. 채소( 무, 청갓, 홍갓, 미나리, 쪽파, 대파)를 씻은 다음 무한 썰기로 스타트된다.


여기서 무는 칼로 너무 얇지 않게 채 썬다. 채칼로 썬 무채는 김치 속이 질어진다 해서, 우리 집은 손으로 직접 썬 정면승부를 한다.


2. 아주 큰 그릇에  어머어마한 양의 고춧가루 투하.

각종 젓갈도 마구마구 투하한다.


매년 젓갈은 조금씩 달라지나  올해는 황석어젓, 멸치액젓, 추젓, 육젓, 생새우가 들어갔다.


3. 버무리기 아직 뻑뻑한 고춧가루에 전날 만들어 식힌 다싯물과 찹쌀풀을 넣는다.


4. 많은 양의 마늘과 생강, 매실액 조금, 청각도 아주 잘게 다져 넣는다. 청각은 얼핏 보면 검정 실지렁이처럼 생겼다.  보기엔 좀 거부감이 있지만 청각이 들어가면 김치가 시원해진다. 동치미에는 필수!


이 많은 재료들을 섞는 과정에 팔이 떨어져 나갈 거 같다. 아마 우리나라 여자들 오십견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김장도 한몫을 하리라.


5. 이렇게 속이 만들어지면 맛을 봐서 부족한 맛은 소금이나 액젓을 추가해서 맞춘다.


6. 이다음 과정은 기나긴 속 넣기 과정의 지구력 끝판왕이 기다린다.


올해는 속 넣기 자세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매년 앉아서 하다가 다리에 무리가 간다는 생각에 식탁을 거실 중앙에 놓고 비닐을 쫙 깔았다.

식탁 가운데에 김치 속을 조금씩 덜어내어 각자 식탁의 한변에 서서 속을 채워나갔다.

올해의 김장풍경 김치공장이었다.

형님, 시누이, 나 이렇게 세명의 여자들은 내내 서서 손과 입만 바삐 움직인다.

어머님은 세명의 여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제일 바쁘다.

" 여기요~통 다 채웠어요. 다른 통 주세요"

" 어머님, 바닥에 김치 속 떨어졌어요. 닦아주세요"

" 장갑 좀 올려주세요"

" 배추 없어요. 가져다주세요"

 어머님은 손, 발이 쉴 틈 없다.


짜장면과 탕수육이 도착했다.

장갑을 벗는 일조차 버겁고 힘들다.

내내 서있던 다리와 허리도 움직이니 여기저기서 "아이고~" 소리가 난다.

그래도 맛난 점심과 달달한 커피 한잔에 다시 힘을 내어본다.


김치냉장고만 3개인 어머님의 김치통이 거의 채워져 간다. 형님과 나의 김치통도 채워져 간다. 시누이는 그때그때 어머님 댁에서 조금씩 가져간다고 통을 안 가져왔다.

사실 여기서 미스터리가 있다.

같은 김치인데, 어머님네 김치가 제일 맛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양념으로 만든 것처럼...

김치 냉장고의 차이일까? 하루 이틀 숙성과정과 냉장고에 넣는 타이밍의 차이일까?

" 어머님, 끝이 보이나요?"

산에서 내려오는 이들에게 정상이 멀었냐는 물음에 항상 다 왔다고 하듯, 어머님도 계속해서 " 끝이 보인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 끝은 좀처럼 끝날 듯 끝이 안나다, 뚝 끝이 났다.


해는 져서 어느덧 어두워졌고, 우리 네 여자들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배추 두 포기 정도는 손으로 찢어서 겉절이로 버무린다.

남은 김치 속에 미나리와 쪽파를 더 넣고 설탕, 참기름, 통깨, 통영 통통 굴을 듬뿍 넣고 버무린다. 이렇게 완성한 겉절이를 맛보면 내년 일 년의 김치 맛을 확신할 수 있다.

우윳빛의 굴이 빨갛게 물었다. 그 굴과 배추, 미나리를 다 싸서 입안 가득 집어넣는다.

'내년도 성공적이다'


이제 우리가 뒷정리하는 동안 어머님은 쌀밥과 고기를 삶으신다.

우리 집안에서 김장을 하루 한다는 건 그래도 올 한 해의 무탈함을 이야기해 주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직 어머님이 건강하시고, 우리 삼 형제네가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우애가 있고, 올해는 님편들이 못 왔지만 이 무거운 김치통들을 받아 올려 줄 것이다. 아이들이 학원을 갔다 와서 오늘 만든 겉절이에 수육을 맛보며 하루일을 이야기하겠지.

어머님 말씀처럼 앞으로 몇 년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내게 김장의 하루는 너무 고달픈 하루지만, 너무 감사한 하루 기도 했다.

올해 너무나도 힘든 한 해를 겪은 나에게 겨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요즘, 그래서 무탈하게 김장 담그러 올 수 있던 이 하루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오늘 김치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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