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주파수를 찾아서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 말소리, 차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등 우리의 귀는 쉴 시간이 없다. 이렇게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은 각자의 주파수로 라디오를 송출하는 것 같다. 그렇다는 건 나의 주파수, 나의 가치관, 고유한 리듬, 내면의 목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주파수를 맞추어 원하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나의 주파수와 맞는 존재들이 있다. 그 존재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같은 떨림을 공유한다는 것,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소중하다.
반대로 주파수가 맞지 않는 존재와의 관계는 피로하다. 자꾸 잡음이 발생하고 지지직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양으로 따지면 일상에선 이런 관계가 훨씬 많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문드러지는 소모적인 만남, 겉돌며 의미 없는 말만 오가는 만남, 진심 없이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들로만 채워지는 시간 등 사람은 주파수가 달라 곤욕을 치른다. 이럴 때면 수많은 사람 속에 있지만, 나 홀로 인 것만 같은 고독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면 원하는 라디오를 찾으려 채널을 돌릴 때, 명확한 소리가 아닌 잡음이 들리는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지루한 잡음이 이어지다가 우연한 순간 주파수가 명확히 포착될 때도 있다. 대화 중 상대방의 눈빛에서 공감을 볼 때도 있고, 침묵 속에서도 불편함이 아니라 편안하게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혼자 품고 있던 마이너 한 취향 또는 생각을 타인에게서 발견할 때도 있다. 모두 주파수가 일치하는 상황이다. 주파수가 맞으면 먼저 반갑고, 다음으로 편안하고, 결국 행복하다. 이런 존재들과는 깊어지며 얽힌다.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가 미세한 신호로 서로를 알아보고, 그 신호를 나누어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는 명료한 경험은 심장이 따뜻하게 울리는 공명 현상이다.
주파수로 표현했지만, 이는 내면의 가치와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를 말한다. 즉, 공명하는 관계란 피상적이 아니라 심연의 연결이다. 너와 나의 같음을 먼저 발견하고, 다름까지 인정하고 나누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같음과 다름의 미묘한 공존으로 발생하는 근본적 이해와 지지를 나누게 된다. 이런 관계는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오히려 순환하며 마음을 채워준다. 만남 후 소진이 아닌 동력을 얻는다. 또 공명하는 사람 앞에서는 꾸밈없이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의 존재는 나의 주파수가 정상임을 확인시켜 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더하여 이 관계는 연인이나 절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의 양과 만남의 횟수를 떠나서도 잠깐의 인연에 순간적인 공명을 느낄 수도 있기에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이다.
삶은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추고 찾는 여정이다. 나만의 주파수를 계속 발산하고 나에게 오는 신호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먼저 나만의 주파수가 명료해야 한다. 잡음이 껴있지 않도록 다듬어야 한다. 내가 어떤 주파수를 내는지 알아야 그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다. 그리고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스쳐 지나가는 신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연결을 위한 용기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주파수는 무시해도 무방하다. 나의 고유한 진동을 지켜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공명하는 존재가 없더라도 나만의 주파수가 확실하다면 언젠가 공명하는 우리를 이룰 것이라 확신한다. 공명하길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희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