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삶, 중력의 감각

디딘 땅에 대하여

by 안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땅을 잘 설명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거대한 판으로 온갖 것을 다 빨아드린다.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까? 모든 곳이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사람, 자본, 욕망이 한 곳으로 쏠려 내려간다. 사람들은 이것을 상경, 진출, 성공, 출세 등으로 부르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거대한 중력에 못 이겨 빨려 들어가는 표류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의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쓸려가며 부유한다. 이 삶은 온전한가?

한국인들에게 ‘땅’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 그것은 금세 ‘가격’으로 치환된다. 우리에게 땅은 평이라는 단위와 공시지가로 환산되는 추상의 무엇이다. 오로지 그 땅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는 무엇이 있으며, 내가 그곳을 소유할 수 있느냐의 경제 논리와 환금성만이 땅의 유일한 가치 척도다. 거주의 환경에서 창밖의 풍경과 환한 이웃의 얼굴을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낭만 있는 사람보다 미친 사람 취급받기 쉽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느 땅에 뿌리내린 자들에게 땅이란 노동과 시간이 집적된 구체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땅의 가치는 그 위에서 행위 주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오래된 책방 주인이 골목의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 농부가 흙을 감각하고 그 위에 작물을 길러내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모든 욕망이 집결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땅에서는 비교가 미덕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능력이다. 꺼지지 않는 불빛의 도시는 언제나 노력과 열정으로 삶을 밝혀야 하고 천만 개의 고독이 쌓인 탑은 지금도 홀로 서 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시민이라기보다 어느 때는 고객이고, 다른 경우 소비자 또는 생산자이며, 혹은 세입자 등의 정체성을 가진다. 시장에 따라 땅의 가치가 오염되거나 망가지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가며 삶을 꾸려나간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상과 이율배반적이라 비판하기 쉽지만, 그 행위가 한국 사회에서 전략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기에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어렵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는 내가 나고 자란 땅을 사랑한다. 노인 비율이 압도적이고 항상 유행을 타지 않으며 이웃들의 소식을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좋은 곳이라는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이 동네만의 특색을 살려 청년이 살고 싶은 곳, 유행을 선도하는 곳, 이웃 간의 배려가 남아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진정한 진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불리한 조건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모순과 싸워 그곳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기를 꿈꾸는 것. 자신의 땅을 버리고 떠나는 행위는 자유로운 유목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쫓겨 떠나는 유랑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한 점을 향해 수직으로 기어오르는 경쟁을 멈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수평적으로 넓어져야 한다. 곳곳에 자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타인과 연대하는 것이 사회적 힘을 발휘할 방법이기도 하다. 휩쓸려가지 않고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은 어쩌면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보다 더 큰 근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의 중력을 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놓고 살아간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다. 흩어지기 전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기어이 그 땅에서 나만의 꽃을 피워내는 상상을 해보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건조한 일상의 우아한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