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성의 요새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21세기 한국의 대학을 생각하다

by 안진

한국에서 대학이란 20대 초반이 안정적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좁고 단일한 통로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악화라는 표면적 위기 이면에 대학이라는 존재 자체의 획일성 문제가 자리한 것이다. 대학의 문을 통과하려면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서면 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배제하고 그렇게 중요하다는 대학 입시를 객관식 문제 맞히기로 줄 세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 과정은 학문적 사유의 다양성과 경로의 다양성을 모두 압살 한다. 대학이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사회적, 지적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대학이 취업률로 평가받는다는 현실은 우스운 일이다. 이는 인문학, 순수과학 등 기초학문이 고사하는 일로서 사회 전체의 지적 빈곤과 획일화를 가속한다. 대학은 20대 초반을 사회가 써먹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과 비판적 사유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서울 집중 현상을 타파하는 것과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고유한 특성을 찾아나가는 일은 당연히 가야 할 길이다. 어쩌면 서울대 여러 개보다 각 지역에 특화된 대학들이 생겨나 사회 전체적으로 다원화된 대학들이 들어서야 한다.

더하여 대학은 성인의 초반에서 당장 써먹을 지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학습과 학문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나이와 경험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20대 초반의 학생과 정년 이전의 교수들만 모인 것은 폐쇄적 공간을 의미한다. 직업을 전환하려는 40대, 은퇴 후 새로운 지적 탐구를 원하는 70대 모두가 함께 수직, 수평을 막론하고 토론할 장이 열려야 한다. 세대 간 경험과 지식의 교류가 곧 다양성의 실현이다. 4년제 학위 중심의 경직된 학제는 종이 한 장을 발급해 주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무의미한 일이다. 마이크로 디그리, 단기 집중 과정, 시민 교양 과목 등을 대폭 확대하여 누구나, 언제든 대학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시민의 대학이 미래 한국의 모습이어야 한다.

현재 등록금은 대학의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대학의 경제적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세한 통계를 대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대학의 노동자나 교수들의 처우를 볼 때도 대학의 사정이 좋아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짐을 학생에게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 등록금 부담의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가 되어야 한다. 기업이 훈련된 인재를 채용하면서 그 양성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고등 교육세, 기업 인재 양성 부담금 등의 항목으로 기업이 대학 재정의 일정 부분을 분담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책임은 고등교육 국가 예산을 확충하여 결과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직접 부담률이 매우 낮거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대학 불패의 신화와 서열화가 해체되어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학업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의 고리를 끊고 돈으로 학업을 구매하여 계층을 공고히 하는 악습이 타파돼야 한다. 이 고리타분한 생각을 버리지 않더라도 AI 등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회 변화로 세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 개인과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저항해서는 답이 없다. 다원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수적인 사회에 학부모와 학생, 즉 교육의 주체가 인식이 변화되어 평가 기준 이동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누구의 것이라거나 이용해 먹을 수단이 아니라 모두의 자산인 민주적 공공재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지성의 다양성, 세대의 다양성, 기회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완전한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서열과 빚의 굴레를 벗어던진 대학은 시민들이 평생에 걸쳐 자신을 성찰하고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진정한 다양성의 광장이자 성숙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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