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이의 가방에서 본 세상의 무게
천안의 어느 번화가 근처 찜질방에 중년 여성과 어린 여자아이가 누워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이나 되었을까? 두 여자가 새벽 6시 30분경 잠에서 깨더니 아이는 가방에서 노트와 필통을 꺼내 나무 판상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중년 여성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아이가 뭘 하는지 궁금하셨는지 두어 번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넌지시 바라보았건만 바로 옆에 있는 중년 여성은 관심도 없었다. 그러고 아이는 책가방을 열어젖히고 노트와 필통을 야무지게 정리하여 넣은 뒤 여자와 몇 마디 나누고는 일어나 사라졌다. 중년 여성은 아이가 따라오는지 보지 않고 먼저 휙 가버렸고 아이는 거울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곧이어 중년 여성을 따라갔다.
둘의 관계는 무엇이며 어떤 사연이 있을까? 큰 빚을 진 부모와 자녀라거나, 돈이 없는 친척에게 맡겨진 아이라는 등의 얄팍한 상상을 하며 아이가 안쓰러워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걷는 아이의 걸음이 꽤 당차 보인 것도 같아 찜질방 구경을 온 평범한 가정이나 친척 사이가 아닐까 하고 잠을 못 잔 나의 새벽을 탓하기도 했다.
막연히 아이를 돕고 싶다가, 세상은 온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며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비관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며 자꾸 여자아이의 등이 떠오른다. 그 아이에게는 무슨 짐이 있을까? 아무래도 비관의 이야기를 상정한 듯하다.
이런 광경을 보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숙소를 잡지 않고 찜질방에서 자겠다고 한 친구들의 탓이다. 아니, 돈이 아깝다면서도 굳이 여행을 온 내 탓이다. 어쩌면 아무 데서나 퍼질러 자지 못하는 천성을 물려준 부모 탓일까? 이렇게 생각하자면 끝이 없으니 이만하겠다.
오늘 본 중년 여성과 여자아이는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다시 마주친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노파심에, 새벽 감성에 바라는 것은 그 여자 아이에게 이 세상이 조금은 살 만한 곳이면 좋겠다. 천장에 촌스러운 장식이 달리고 아줌마, 아저씨의 코골이가 들리는 찜질방과 어울리는 삶이 아니면 좋겠다. 아무래도 이런 곳은 꿈꾸기엔 적합하지 않다. 나의 모든 걱정이 노파심이면 좋겠다. 그냥 아이 등의 가방이 무거워 보였을 뿐이고 일어나자마자 떼쓰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고 나무 판상 위에서 무언가 열심히 했던 아이의 모습이 너무 세상과 닮아 보였을 뿐이다. 아이에겐 즐거운 하루의 시작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