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출석번호는 41번부터 시작했을까?: 일상 관행 속에 숨겨진 불평등
초등학교 시절 신발장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가나다순으로 정해진 번호에 학생들은 각자의 신발을 올려놓아야 했다. 김 씨 성을 가진 나는 보통 2번이나 3번이었다. 급식, 체험 학습, 숙제 검사 등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정해진 번호순으로 이루어졌기에 나는 빨리, 먼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나다 순 이전에 먼저 분류되는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였다. 남학생들 먼저 1번부터 가나다순으로 배정한 뒤 여학생들을 41번부터 가나다순으로 배정했다.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이다. 기껏해야 ‘왜 21번도 아니고 31번도 아니고 41번으로 시작할까?’라는 정도의 질문만 있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이 작은 일상의 관행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성차별적 구조와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릴 적부터 이런 관행들에 젖어든 남녀가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고 평등을 이룰 수 있을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같이 마주 앉아 ‘우리’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출석 번호를 생각하고 학교생활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번호의 차이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학생 사이에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선생님이 출석을 불러도 1번부터 부른다. 남자가 먼저 불리는 것이다. 급식을 먹어도 먼저 배식받는다. 앞서 나서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급식 시간은 정해져 있다. 당연히 먼저 배식을 받는 사람이 시간을 쓰는 데 유리하다. 그리고 남학생들은 보통 빨리 먹는다. 평균적으로 먹는 속도를 배려한다면 급식 시간에는 여학생들이 먼저 배식받는 것이 온당했을지도 모른다.
숫자에 들어있던 불평등을 떠올리다 보니 주민등록번호 7번째 자리도 생각하게 되었다. 7번째 자리는 생년월일이 끝나고 부여받는 숫자로 남자는 1번이나 3번, 여자는 2번이나 4번이다. 여기에도 남자들의 숫자가 앞서 있다. 이 자체로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필자와 같이 대부분의 남성과 다수의 여성은 특별히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굳이 표현하자면 미시적 차별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 개인의 경험칙에 따라 판단하면 작은 차별은 반드시 큰 차별을 불러온다.
지금껏 기술한 차별은 일상에 내재된 차별이자 보이지 않는 관행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조망하여 주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의 얘기가 보편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필자와 같이 무지한 청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기도 하다. 더하여 불평등 담론은 혐오의 논리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이대남을 중심으로 하여 혐오와 조롱의 언어로 사용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진보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말들로 폄하된다.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지만, 인터넷상의 댓글들만 조금 보더라도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말들로 가득하다.
짐작하다시피 필자는 남성이다. 최근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불안과 어려움, 구조적인 문제, 만연한 불평등, 내재된 차별들을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생각하며 많은 반성과 함께 한계를 느꼈다. 필자 개인의 능력 부족인지는 모르겠으나 배운 지식과 알게 된 깨달음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여성들에게는 머리로 아는 지식을 적용하면서도 온라인상에 있는, 모르는 여성에게는 배움을 적용하고 공감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보며 가진 자가 말하는 평등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했고 차별당했던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고통은 절대 남성이 알 수 없다. 현재의 성갈등이란 남성들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 부족, 사회에 대한 편협한 사고, 부족한 배움으로 인한 갈등이라 생각한다. 한쪽을 악마화하고 모든 문제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청년의 구조적 고통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된 사회이자 민주주의를 한다는 국가에서 현재도 실존하는 불평등, 부조리, 유리천장의 모습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부른다. 지금의 초등학교는 필자가 다닐 때와는 또 다를 것이다. 또한 호주제의 폐지로 엄마의 성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제도적으로 과거에 비해 여성의 인권 신장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와 인식 수준에서의 변화는 지리멸렬하다. 평등의 재정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1번과 41번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일상의 모습에서 불평등의 요소를 발견한 것처럼 독자들도, 특히 일상에서 성 불평등을 체감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공부하고, 알게 되면 이해하고,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 세대 앞에 직면한 큰 문제를 같이 해결할 동반자이다. 진보는 관성에서 벗어나 불편함을 추구할 때 일어난다.